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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체험한 스데반 박승남 202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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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7:51-60절 개역개정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후반에 인터넷 문제로 일찍 종료되었습니다.  

종료 이후의 설교 내용입니다.

 

자식 사랑, 나라 사랑이 이토록 벌떡 일어나게 하는 힘으로 작동한다면, 한없이 부족한 우리 인간들을 그토록 사랑하셨고 또 지금도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어떻게 위기일발, 그것도 억울하게, 너무나 억울하게 고통당하고 죽임당하는 사람을 보고, 교리의 예수처럼 하나님 우편에 가만히 앉아 계실 수만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려운 처지에 빠져 하늘을 우러러 부활의 주님을 기릴 때 사랑의 주님께서는 교리의 옥좌를 박차고 벌떡 일어서시는 분이시지요. 이것은 영적이기에 실제적인 응원의 힘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뜻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은 시간과 영원을 이어주는 생명의 다리라는 진리입니다. 예수 부활은 내재(內在)와 초월(超越) 사이를 이어주고, 역사와 영원 사이를 소통시켜 줍니다. 단순한 정보의 소통이 아니라, 뜨거운 사랑의 교감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의 그리스도는 갈릴리 예수처럼 따뜻한 사랑의 가슴으로 언제 어디서나 억울한 고통이 있는 곳에 달려가십니다.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이 반쯤 맞아 죽은 나그네에게 다가가듯 부활의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위해 보좌에서 벌떡 일어서기도 하십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초월자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 현장에서 당신의 자녀와 동고(同苦)하시려고 오늘도 서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확인하는 감동이 바로 부활절의 감동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부활은 그 절절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의 현실에서 뜨겁게 느끼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부활하셨기에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던 제자들을 찾아가신 그리고 갈릴리 호수에서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제자들을 찾아가신 부활하신 예수의 사랑을 더욱 뜨겁게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같은 진리를 초대 교인들은 온몸과 온 마음으로 체험했기에 그렇게 담대해질 수 있었고 그렇게 평화롭게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그 아름다운 얼굴이요, 실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같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 현실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더욱 헌신할 때 부활의 그 감동은 더욱 커지고 더욱 뜨거워집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하자 무리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쳐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할 때 감동적인 또 다른 스데반의 모습을 확인하게 됩니다. 거칠게, 잔인하게 날아오는 돌들을 맞으며 죽는 순간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7:59-6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그런데 예수님을 꼭 닮은 스데반도 이리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를 비정하게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는 그 마음, 그 아름다운 마음이 부활의 아름다운 힘입니다. 이 힘이 초대교회와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높이 올려놓은 힘입니다. 그런데 과연 초대교회의 이같은 동력과 열정, 그 부활의 능력이 지금도 기독교 안에 살아 있습니까? 아니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로 자처하는 우리가 스데반의 그 부활 신앙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마음에 아직도 용서하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직 주님과 멀리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계속되는 부활절 절기를 지내면서 우리의 부족함과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고 주님과 같이 그리고 주님을 따른 스데반의 천사 같은 아름다운 그 모습을 닮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인생의 마라톤 결승선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손을 흔들고 계십니다우리에게 씌워주실 스테파노스 즉 면류관을 예비하시고 말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그 영향력이 미쳐지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첫째로, 81절에 보면, 그의 순교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왔지만, 그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 방향이 전환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흩어진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영향은 곧 바로 바울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024절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한 말은 스데반의 순교의 정신을 이어받은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영향은 안디옥 교회를 세워 이방에 최초로 복음을 전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을 통하여 복음이 이방으로 담대해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죽어서도 말하는 사람, 그분이 바로 주님의 부활을 체험한 스데반입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드립시다. 주님, 부활의 그 감동,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마저 용서하고 껴안는 그 아름다운 부활의 열린 감동이 저희들을 압도하게 하옵소서. 사랑이시기에 지금도 서 계시며 저희들을 용서하시고 품어주시는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게 하소서. 부활의 힘이 저의 삶 속에서 폭발하게 하시어 사나 죽으나 천사의 얼굴로 남을 사랑하고 평화를 만들면서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서 계신 사랑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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