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모든 종교가 가장 중요하게 하는 것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자기들의 신에 대한 최고의 신앙적 자세는 그 신전을 최고의 물질적 보화로 최대의 건물을 짓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 역사상 최대의 건물은 다 신전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에는 돌로 만든 웅장한 성전의 터와 건물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 성전을 차지하기 위해 유대인들과 회교 인들이 얼마나 많은 피나는 투쟁을 했는지 모르고 앞으로도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건물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역사적으로 3성전이 있었습니다. 우선 솔로몬이 지은 솔로몬 성전(B. C 958-951)으로 이 성전은 무거운 물건을 틀가락으로 메어서 나르는 담꾼 칠 만 명과 벌목공 팔만명과 감독자 삼천 육백 명이 동원되어 7년 동안 공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360여년이 지난 뒤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두 번째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지은 스룹바벨 성전이 있습니다. 우리는 새벽기도 시간에 학개 스가랴서를 통해 이 성전 건축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3번째는 헤롯이 주전 20년부터 제2 스룹바벨 성전을 개축한 성전으로 이 헤롯성전은 그로부터 46년이 지나 예수님께서 성전에 찾아오신 때인 주후 27년경에도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성전이야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신앙의 중심이요,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저들은 모든 삶을 성전을 중심으로 하고 순례자의 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저들은 일 년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 절기를 지켰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든 복과 은총을 받는 선민의 긍지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성전 없이는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존중히 여기는 성전을 헐라 하셨으니 이는 혁명적인 선언이요, 유대인의 신앙에 정면으로 도전하신 것입니다. 분명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유대인들은 매우 분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하셨을까요?
그것은 지난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전이 이익 추구에 혈안이 된 시장과 그것을 비호하는 강도 같은 타락한 교권주의 자들의 소굴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지난 주 살펴본 대로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상으로 우글거리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원래 이 시장은 먼데서 오는 순례자들을 위하여 성전 문 밖에 있던 것이 어느 때부터인지 슬그머니 성전 문 안, 이방인의 뜰로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물론 이는 당시 성전당국자들의 허락 없이는 될 수 없는 것이니 결국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제사장들과 상인들이 결탁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서 예배가 제대로 드려질리 만무했습니다.
진정 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입니다. 하지만 경건하게 예배드리러 온 사람들을 방해했고 마땅히 있어야 할 기도의 사람은 없이 장사치들만이 우글거렸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성전, 엉터리 예배, 타락한 예배를 드리는 성전은 헐어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 이사야서를 보면 하나님은 엉터리 제사를 드리는 자들을 향하여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양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하시면서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 그러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너희가 드리는 제사와 지키는 절기는 내가 가증히 여기는 것이라 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내가 사흘 동안에 성전을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흥분한 유대인들은 “46년 동안 지은 이 성전을 어떻게 3일 만에 짓겠다고 하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성전건축을 몸으로 세우실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부활하시어 수많은 세계 인류의 심장 속에 예루살렘(평화)의 성전을 짓게 하셨고 참된 예배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성전이란 무엇입니까? 성전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이 성전을 헐라 하신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유대인들은 성전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본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 처소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거하시지만 또한 땅에서 인간을 만나는 구별된 처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 것을 명하시면서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지으라”(출25:8)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저들과 함께 계시어 저들의 예배와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저들의 죄를 용서 해주시고 삶의 새 소망과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후 솔로몬 시대가 되어 성전이 건축 되었습니다. 사실 성전건축은 다윗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는 곳인 궁궐은 화려한데 변변한 하나님의 집도 없이 초라한 성막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고 죄송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전은 평화의 집인데 너처럼 피를 많이 흘린 군인이 짓기에는 합당치 않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교회는 예배당을 지으면서 다투고 싸우기 까지 하기도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성전일 짓지 않는 것이 낳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고 말입니다. 진정 성전은 성도의 기도와 사랑 가운데 지어야 하고 화목한 가운데 지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교회가 평안할 때 주님의 전을 아름답게 세우지는 것입니다.
아무튼 성전은 솔로몬이 짓게 되었습니다. 성전 봉헌식을 할 때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 때 솔로몬이 드린 기도에는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여러분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 크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과 함께 거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니까 솔로몬이 두려워진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신데 어떻게 이 전에 모실 수 있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우주 만물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러한 분을 어떻게 내가 지은 집에 계시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고 또 하나님을 가두어 둘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 안에도 계시고 밖에도 계시며, 우주 안에도 계시고 우주 밖에도 계신데 어떻게 내가 지은 집에만 계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전에만 계시다가 우리들이 와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기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가정과 직장에도 계시고 시장에도 계시고 길거리에도 계시고 어디나 계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솔로몬은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집에서 기도할 때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예배할 때 받아 주시고, 찬양을 받아 주시옵소서.”
어디에서나 계시는 하나님이시만 그 하나님께서 특히 성전에 임재하시어 주님을 찾아 나온 이들을 만나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예배를 받으시고 기도를 들어주시고 복과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이 처소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처소는 어디에 있든지 장소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예배당은 지금은 여기에 있지만 몇 달 뒷면 이제 이곳은 식당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밭으로 있던 곳이 예배당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진짜 성전이고, 황금으로 만든 성전이 진짜 성전이라고 믿습니다. 성전을 절대화 우상화했습니다. 성전이 곧 하나님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주님은 이 성전을 헐라고 하셨고 AD 70년에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전 터에는 회교 사원이 건축되어 지금까지도 회복이 안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전은 무엇으로 만들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느냐, 그 안에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와 기도와 찬양을 드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이 진정 주님 뜻대로 살려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어떤 것도 주님과 바꿀 수 없습니다. 물질도, 명예도, 권력도 그리고 성전조차도 하나님과 바꿀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없어질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하신 그 분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 우리는 세상을 섬길 수 있고 또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진짜 성전, 교회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진짜 성전은 ‘자기 육체’즉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희생시키시면서 세운 진짜 성전으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을 위한 예배와 희생의 제물을 위한 거룩한 장소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건물에 거처를 삼으시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처를 삼으시고 지상에 임재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전이 예수님의 몸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성전의 본질, 핵심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1:22~23절에서 이것과 비슷한 말씀을 전해줍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구약에 나타나는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보여 주기 위한 예표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학개서와 스가랴서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학개서를 보면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를 것과 나중 영광이 이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클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스가랴서를 보면 메시야 예언이 얼마나 많이 또한 구체적으로 나오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전에 입성하실 것, 은 30에 팔리실 것, 모퉁잇돌이 되실 것,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할 것,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릴 것, 이방인들이 구원받을 것 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중심은 성전 건축을 넘어 바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이 세우실 몸된 교회를 통한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전 안에는 성막이 있습니다. 성막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막에서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그런데 제사의 핵심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당시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미래에 오실 메시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실 보혈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성전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은 못 보고 건물만을 보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저들은 타락했고 주님은 그 성전을 헐라 하시고는 실제로 헐어버려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다”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3일 만에 일으키겠다” 하셨는데 이는 그 성전은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는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를 이루실 주님의 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성전의 본질,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의 본질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다른 말로 보혈입니다. 희생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능력입니다. 사랑의 능력, 보혈의 능력, 희생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부활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8:11절을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부활은 성령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이 성령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공동체입니다. 또한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 모인 이유는 십자가를 경험하고 부활을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의 깊은 사랑과 그 은혜를 경험하는 성도, 십자가의 그 희생, 흘리신 보혈이 바로 죄악된 나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경험한 성도는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인데 이렇게 나를 사랑해 주시나, 내가 무엇이관데 나 같은 죄인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그 험한 십자가를 지시고 그 귀한 보혈을 흘리셨나하며 감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란 보혈의 공동체입니다. 능력 공동체입니다. 부활의 공동체입니다. 기쁨과 감사와 감격의 공동체입니다. 돌로 만들었던 벽돌로 만들었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장로교이든 침례교이든 감리교이든 그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 보혈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이들을 향해서 사도바울은 외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모두 다 개인 성전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연합된 한 성전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2:20~2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성전은 구속받은 성도들의 살아 있는 모입니다. 이는 개개인의 성전이 집합되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성전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산돌입니다. 우리는 몸으로 지어진 성전이므로 몸으로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말씀과 친교와 교육과 봉사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성전을 건축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가는 곳마다 성도의 집을 교회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가장 성령의 역사가 강렬하였고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성전건축을 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헐라하시는 성전은 건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당은 구약시대의 성전은 아닙니다. 이미 성전 되신 예수님께서 구약의 성전을 허시고 완전한 성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전과 교회당은 다릅니다. 하지만 성전과 교회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신약시대에는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없어졌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약의 성전의 의미를 성취하고 난 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들이 모여서 교회공동체가 형성되고 오늘날의 조직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이 조직 교회들이 오늘날의 지역 교회(local church)인데, 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하며,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고, 또한 성도들을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합니다. 이 지역교회에도 하나님이 동일하게 임재하시고 교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권위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주님이 임재하시는 교회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예배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예배당 역시 거룩한 곳입니다. 신약시대의 교회당이 구약시대의 성전과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로 세상의 장소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러한 것을 지으려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봉사하며 섬기는 교회, 이웃과 민족과 세계를 품고 복음을 전하는 전초기지가 되는 집을 말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초대교회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물질적인 재산과 부요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만을 위해 쌓아두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저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러니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행2:44~47) 어떻게 이렇게 사랑하며 기쁨과 감사와 찬양으로 살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보혈의 능력, 성령의 능력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건물을 건축한다 해도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 건물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작은 건물이라도 진정 주님의 몸으로서 참된 성전의 본질을 회복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귀한 건물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예배당에 어떠한 사람들이 거하느냐 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부활하신 뒤에야 비로소 이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오신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할까요?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이해하시고 어떤 분들은 이해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을 이해해야 올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건물이나 교파나 제도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보혈의 능력입니다. 부활의 능력이요 성령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성령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체험한 사람은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이길 힘을 얻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합니다.
그리고 혹시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 언젠가 이해할 날이 옵니다. 언젠가는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지고 은혜가 되고 평안이 되고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꾸준히 나와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진정 우리 교회가 성전의 비밀을 깨닫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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