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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운영자 200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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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승남 목사 설교일 2007년 4월 15일
신명기 33장  ~ 12절

베냐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고 우리는 노래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랑받지 못하고 산다면 그처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음식을 먹고 산다 해도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이 가시 방석이요 쓰디 쓴 음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도 귀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더욱 귀합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엄청남 불행입니다. 반면 나사로처럼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다 해도 주님을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복된 일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의 사랑을 함께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신명기 33장에서 모세는 베냐민 지파에“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베냐민은 어떻게 해서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된 것일까요?


1. 부모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합니다.


그는 야곱의 막내아들이요 또한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라헬이 낳은 아들입니다. 하지만 베냐민의 출생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라헬은 야곱의 사랑을 흠뻑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지 못해 괴로워했습니다. 레아는 아이를 쑥쑥 잘 낳았지만 라헬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괴로워했습니다. 어느 날 라헬은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창 30:1)


그러자 야곱은 라헬에게 성을 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그런데 그 후 얼마 지나 라헬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하나도 없을 때 하나라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보다는 더 낳고 싶은 욕심에서 “더함”이라는 뜻으로 요셉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더 달라니까 하나님께서 더 주셨는데 그것을 받다가 라헬은 난산으로 죽고 말은 것입니다. 이것은 베들레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길거리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산파는 라헬에게 또 아들을 낳았다고 위로했지만 죽는 순간에 아들이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라헬은 죽어가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지었습니다. 이는“나의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때 곁에 서 있던 야곱은 비록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 말이었지만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름을 ‘베냐민’이라 하였습니다. ‘베냐민’은‘오른손의 아들’‘남쪽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른편을 중요시했는데 성서 속에서 오른편, 오른손 그리고 남쪽은 힘, 능력, 승리, 행복, 총애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비록 너의 어머니는 죽고 없지만 힘 있게 자라 거라.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 행복하고 기쁘고 승리하며 사랑을 받는 자로 살아가라 라는 바람 속에서 베냐민 이라 이름을 불렀던 것입니다.


 여러분 라헬은 외모로 보면 매우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지만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그렇게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야곱과 함께 자기 아버지 라반의 집을 떠날 때 아버지의 가정 수호신인 드라빔(Teraphim)을 도적질해 가지고 섬겼고 언니를 시기 질투하고 남편 야곱에게 억지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어머니의 영향만 받았다면 베냐민은 그야 말로 부정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믿음의 아버지 야곱이 있었습니다. 물론 야곱도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경험했었습니다. 형을 피해 하란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고 하란에서 외삼촌 라반에게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또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세겜에서 그렇게 부끄럽고 두려운 자리까지 떨어졌건만 하나님은 그래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셔서 부르시고 다시금 약속의 자리로 이끌어 주신 그 은혜, 다시금 회복시켜 주시고 새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이러한 하나님을 의지하여 분명한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그래서“베냐민”이라고 이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전적인 베노니의 상황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베냐민의 생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슬픔을 이깁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로마가 부패 일로에 놓여 절망 상태가 되었을 때 그의 신국론에서 “난국에 처한 것을 가지고 쇠퇴했다고 단정하지 말라 과거의 재앙은 오히려 제국을 새롭게 만들지 않았는가? 지금 난국에 처하였다고 결코 절망하지 말라. 그 누가 이 일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알 것인가?” 라고 당시 떠도는 비관론들을 일축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시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들은 슬픔과 관계된 것들이 많습니다. 땅에서 절망적일 때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하나님 없이 생각하는 자들은 언제나 베노니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항상 베냐민입니다.


인생은 생각에 의해 기쁨도 될 수 있고 슬픔도 될 수 있습니다. 내 생각 여하에 따라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져 주십니다. 해서 우리의 모든 생각은 그리스도를 닮아야만 됩니다. 지금까지의 베노니 생각, 베노니 눈, 베노니 말, 베노니 귀, 베노니 발걸음을 베냐민으로 바꾸십시오. 기독교 신앙은 긍정이요 기대이며 소망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이러한 믿음과 소망으로 말미암아 오른손의 아들 베냐민은 그야 말로 사랑받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서 느껴지는 베냐민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랑받는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물론 이복형들의 사랑까지도 받고 또한 친형 요셉의 깊은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도 받았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아버지 야곱의 믿음의 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라헬과 같이 감사할 줄 모르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자식들도 진정 사랑받는 자들 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2. 물어뜯고 움킨 것을 나누는 이리 - 야곱의 축복


 야곱은 죽기 전 12아들을 위한 기도에서 베냐민을 위해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창49:27) 이리는 개과에 속하는 육식성 포유동물 중에서는 가장 큰 동물입니다. 이리는 홀로 또는 떼를 지어 사냥을 하는데 이리들은 용감성, 난폭성, 탐욕 등으로 유명하며, 힘 있고 강한 집념이 있어서 목표를 향하여 돌진하는 목표지향적인 동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리는 분명 호전적이고 사나운 부정적인 이미지와 용감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야곱의 이 축복은 베냐민 지파가 호전적인 지파가 될 것이라고 경고이기도 한데 실제 베냐민 지파는 그 같은 사나운 성격으로 인해 기브아에서 모든 지파들과 더불어 싸우고 완전히 진멸 될 뻔 하다 겨우 600명만 살아남기도 했습니다.(삿20장)


그러나 야곱은 이 이름을 지으면서 베냐민 즉 오른손의 아들, 힘 있고 능력 있는 아들, 승리하는 아들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 축복할 때도 그에 걸맞게 물어뜯는 이리,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는 이리로 축복했습니다. 여러분 물어뜯고 빼앗을 때 그 대상이 누구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동족, 가난한 이들의 것을 물어뜯고 빼앗는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지키고 구하기 위해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용감하게 대적들을, 죄와 원수 마귀를 물어뜯고 사람과 재산 그리고 영혼을 대적에게서 빼앗는다면 이것은 백번 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일입니다. 특히 싸워야 할 때 용감하게 나서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차일 파일 미루고 겁내어 공격해야 할 시점을 잃어버린다면 승리할 수 없게 됩니다.


링컨 대통령의 연설(Gettysburg Address 1863년 11월 19일)로 유명한 게티즈버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남북전쟁(1861∼1865)에서는 매우 중요한 전투지역이 되었습니다. 1863년 7월 1일 이곳에서 남부 연맹 군과 북부 연방군이 우연히 서로 조우하게 되어 3일간 처절한 전쟁이 치러졌습니다. 그리고 남부 연맹군의 조지 픽케트(Geoge Pickett) 장군의 실책 때문에 북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남북전쟁의 판세는 북군의 승리로 굳어지게 되었고 전쟁은 곧 끝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그로부터 2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그 이유는 북부 군의 조지 미데 장군(George Meade)이 남부군을 궤멸 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킬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미데 장군은 패배한 로버트 리 장군의 군사들을 추격하는데 지나치게 신중했던 것입니다.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고, 리의 잔존 부대를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그 틈에 남부군 군대는 패배의 쓰라림에서 다시 회복할 수 있었고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남군 병사들은 버지니아로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북군의 조지 미데 장군이 본문에 나오는 물어뜯는 이리와 같이 담대하게 신속해 추격하여 무찔렀다면 남북전쟁은 그리 오래 끌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리와 같이 용감하고 끈질긴 베냐민 지파의 인물들이 많이 있는데 그 몇 명을 말씀드리면


1)에훗입니다. 


 이스라엘이 모압을 침략을 받아서 정복을 당할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한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바로 에훗입니다. 그런데 그는 오른손의 아들인 베냐민 지파였음에도 왼손잡이로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무슨 병사들이 준비되어 있는 것도 변변한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 같으면 나는 못하겠다고 자빠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얼마나 지혜롭고 용감했던지 홀로 모압 왕 에글론의 거처까지 들어가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 넣어 두었던 칼을 빼어 비둔했던 왕의 몸을 찔러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에브라임 산간 지방으로 가 소집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따르라! 주께서 너희 원수 모압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삿3:28) 하면서 앞장서서 모압을 쳐 내려가서 대승을 거두어 민족의 독립을 이룰 수 있게 했습니다. 


2)초기의 사울도 그렇습니다. 그는 왕이 된 직후 암몬의 압제에 시달리는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나 소를 잡아 각을 떠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전령을 통해 보내며 이렇게 외치게 했습니다.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삼상11:7) 그리고는 앞장서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3)모르드개는 하만이 유대 민족을 학살할 음모를 꾸밀 때 에스더와 함께 그 민족을 구한 베냐민의 이리입니다. 모르드개는 불의에 굴복할 줄 몰랐습니다. 비록 자신이 약한 위치였지만 이리처럼 끝까지 싸울 수 있는 끈질긴 성격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움츠리던 에스더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4:13~14)


4)그리고 베냐민 지파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다름 아닌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뒤에는 자신이 그동안 자랑하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오로지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그는 실로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빌3:14)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죽일 정도로 독기를 품은 이리였지만 후에는 주님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아름다운 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은 베냐민을 말하면서 그냥 물어뜯고 빼앗는 이리가 아니라 움킨 것을 나누는 이리라 했습니다. 노략한 것을 같이 나누는 좋은 이리입니다.


우리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는 이 교회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맨 날 사랑받기만 바라면 어떻게 하나, 사랑을 나누어 주어지 하는 뜻에서입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받기만 하지 말고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2절로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편 사랑은 받은 자가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잘 받고 또한 그 사랑에 힘입어 이제 열심히 나누어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주님의 복음을 세상에 나누어 빼앗긴 영혼을 되찾는 이리가 된 것은 무엇보다 주님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날마다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받으며 살기 소원합니다. 그리고 또한 사랑을 나누는 교회, 어떠한 어려움에도, 어떠한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 주신 목표, 비전을 행해 함께 용감하게 달려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3. 주님 곁에 사는 자 - 모세의 축복 


 모세는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하나님 곁에 안전히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일생 다가도록 보호해 주시고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십니다.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신다는 것은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나 ‘등에 업은 모습’을 말합니다. 또한 두 어깨 사이에 머리가 위치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명예롭게 하신다', '머리가 되게 하신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귀한 복입니까?


여러분 베냐민 지파는 유다와 에브라임의 중간 지점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11절). 그곳은 하나님의 성소와 인접한 지역입니다. 즉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 내에는 여호수아 당시에 회막이 세워진 실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상에는 솔로몬 당시 성전이 건립된 예루살렘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냐민 자손은 언제나 성소에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어깨 사이에 처하리라고 한 모세의 예언(신 33:12)이 성취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어깨’는 하나님이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는 자, 그는 하나님의 전에 안연히 거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 당시 남왕국 유다 편에 합류했습니다. 덕분에 북 왕국의 죄악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부터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12제자를 부르시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그러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
내 안에 거하라”“내 사랑 안에 거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품아 안아 주시고 보호해 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 점점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됩니다. 그 분의 그 분의 능력과 그 분의 사랑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사랑과 능력을 깨달은 사람은 매일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고 더욱 기도에 힘씁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물론 그러면 주님은 더욱 더 새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여러분! 진정 여러분은 주님이 함께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으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여 더욱 베냐민의 아름다운 복을 받고 베냐민 지파의 용맹한 인물들처럼 귀한 주님의 일꾼으로 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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