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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오시면 (요16:1~11) 박승남 200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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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사랑 이야기를 하시다가 돌연 미움 이야기를 하십니다. 미워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움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5:18절)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세상이 미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왜요? 우리는 빛의 자녀요 세상은 어두움의 자녀이기 때문에 어두움이 빛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어둠의 자녀들은 빛의 자녀들을 미워해서 박해를 합니다. 결국 세상에서 미움 받을 것을 말씀하신 것은 장차 있을 박해를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실로 제자들은 세상에 많은 미움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유대인들에 의하여 몹시 괴롭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이후 로마당국에 의하여 많은 박해를 받게 되었고 수많은 역사 속에서 교회는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에게 박해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15:2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또한 본문 3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결국 ‘무지’ 때문입니다. 몰라서 당하고 몰라서 악에게 이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잘 알 것 같은데 실상은 너무나 모릅니다. 몰랐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무지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과거에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고 예수 믿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핍박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믿고 충성스럽게 섬긴다고 생각했으나 영적으로 무지몽매했기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실수를 범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님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교회에서 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신앙의 혼돈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실족하게 되기도 합니다.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박해예고를 하신 것일까요?

1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여러분 당시 예수님은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계신 상태였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과 9시간 후에는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생각해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모순입니다. 의로운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가 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악한 자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으며,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시는 등 어디를 보아도 죽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죄인 중의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를 지시므로 암흑과 권세의 승리를 보는 것 같아 보입니다. 진정 모순과 부조리, 비합리와 어두움, 그리고 혼돈입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흔들리게 되고 미혹 당하고 실족하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박해가 가해지며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만이 아니라 부활하셨을 때에도 제자들은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저들은 유대 공동체에서 추방당하기도 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목 베임을 당하여 세상적으로 볼 때는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환난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상과 같은 모든 일들을 예견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결국 박해를 받는 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마음을 준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음 준비 단단히 하면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앎으로 반석 위에 섭니다.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신령한 것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절에서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그렇습니다. 신령한 것 영적인 진리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성령님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지 않으면 별수 없이 환난과 시험이 올 때 배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면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바른 신앙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거듭날 수 있고 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서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가 실족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전에 말씀하신 것이고 또한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주님은 보시고, 들으시고 아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십니다. 생생하게 기억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살아 계신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사랑으로 속삭여 주십니다.

또한 주님은 고난 중에 위로하십니다. 그 상황에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송명희 양의 詩 『동참』을 아십니까?

너 고통당할 때

주님이 너와 함께 고통을 당하시고

너 짐 지고 갈 때

주님이 너의 짐을 가볍게 하시며

너 슬플 때

주님이 위로의 눈길로 너와 동행하신다.

너 외로울 때

너 어찌 홀로 있다 하는가?

너의 모든 것을 동참하시는 주님을

너는 바라보라.

 

그때 우리의 내면에 큰 기쁨이 옵니다. 하늘의 기쁨이 내 마음에 옵니다.

어느 목사님은 감옥에 있을 때 성경을 읽는데 너무 추워서 『불』을 찾아 읽었답니다. 그런데 얼음장처럼 차던 시멘트 바닥에 열선이 깔린 것처럼 따뜻해져서 벽도 만졌답니다. 벽돌에도 따뜻한 불이 들어옵니다. 그는 감방에서 큰 기쁨으로 찬송을 불렀답니다.

 

이어서 주님은 근심에 가득찬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제자들의 믿음이 부족하여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러면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는 것이 왜 제자들(신자들)에게 유익한가요?

예수님께서 떠나지 않으시면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요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면 보혜사 성령이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셨으므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시지만 오실 성령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지 역사 하십니다. 각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늘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계실 때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를 담대하게 하십니다. 환난과 시험을 이기게 하십니다. 오순절에 성령 받은 자들은 더 이상 약한 자들이거나, 무능하거나 비겁한 사람들이거나, 서로 갈라지고 분열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은 그들로 하여금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이전 시대에는 성령이 임하지 않았는가?"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 사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고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5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모태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했고 41절에서는 엘리사벳이, 67절에서는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눅2:25절에 보면 시므온에게도 성령이 그 위에 계셨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성령이 일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만 차이점은 예수님께서 33년 동안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시고 역사 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떠나가신 후에는 성령이 오셔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계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예수 믿게 하고, 죄를 회개하게 하고, 거듭나게 하고, 새 사람이 되게 하고, 환난과 시험을 이기게 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여 믿음으로 살게 하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일을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성령이 오셔서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절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보혜사는 세상에 대해서는 검사 역할입니다.

‘책망’은 헬라어 ‘에렝코오’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모두 17번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잘못된 행위를 폭로하다.’(눅3:19, 요3:20, 엡5;11, 13)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때로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다.’(마18:15, 딤전5:20, 딤후4:2)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고소하다.’ 혹은 ‘고발하다.’(요8:46, 16:8, 유다15)의 뜻으로 쓰입니다. 여기서는 성령님이 세상에 대해 법정의 검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②보혜사는 세상을 세 가지로 고소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세상의 죄를 폭로합니다. 그 잘못을 고발함으로 인간은 죄인임을 알게 합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의 마음에, 양심에 가책을 주어 죄를 고백하게 합니다. 성령님은 ‘의’가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

그리고 보혜사는 세상을 심판합니다. 보혜사는 어떻게 세상을 심판할까요?

예수님의 재판은 아주 특별합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자는 드러난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숨어 있는 죄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심판입니다. 성령님은 양심에 가책을 줍니다. 부끄럽게 합니다. 결국 은밀한 죄인은 손에 든 돌을 내려놓고 사라집니다. 여러분! 부끄러움이 없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첫째,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여러분 로마서 3:23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고, 오히려 배척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군중들이 함성을 질렀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유대인의 태도가 어떨까요? 하나님 거부 이상으로 불쾌-반역입니다.

②그렇다면 ‘죄’가 무엇인가요? 죄라고 하면 뭔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잘못한 것 분명 죄입니다. 십계명에 기록된 계명들을 어기는 것이 모두 죄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지 않는 것들이 모두 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가장 큰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거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원자이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다른 죄들은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이것만은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막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그런데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떠한 희생을 치르셨는지, 어떠한 사랑을 보여 주셨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앞에 설 때 성령님은 우리의 무서운 죄를 깨닫게 합니다. 성령님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당연히 죽일 자를 죽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강림하신 후에 그들은 예수님을 죽인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2장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어찌할꼬!" 하면서 통회했는데 이때 회개한 사람은 3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일을 한 사람들은 로마군인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3천명의 성도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우리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하고 회개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2천 년 전의 예수님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게 되면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나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은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가 거짓이고, 자기들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죄인 취급하고 저주하고 끔찍하게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시고,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의로운 사람이고, 누가 죄인이 되겠습니까?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이것은 주님이 옳았다고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주신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세상 권력의 판결을 뒤집음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십니다. 부활은 하나님의‘의롭다’선언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면 세상 권력의 오판을 하나님의 ‘의롭다’로 재 판결하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아버지께 돌아가시는 승천은‘의롭다’에서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저주받은 아들을 높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천에서 영광으로 높여지신 것입니다.

결국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면 모든 진실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의’를 만방에 공포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 의를 의지해야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여기서 세상의 임금은 사탄을 말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권력자들은 사탄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그들이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의 주관자였던 사탄이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10:1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리고 요12:3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권세는 무너졌고, 우리는 승리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갈 때마다 사탄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이 언약의 성취는 베드로에게서 보여 졌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주도하시는 전도와 선교의 주제입니다. 성령께서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여 사탄의 권세를 파멸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 믿지 않는 죄에 대하여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유일무이한 의의 길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있다는 것도 선포해야 합니다. 어느 분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문입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배운 것도 없고 갖춘 것도 없어서 더 크게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언감생심 하나님께서 저를 크게 써 주시도록 기도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혹시 하나님께서 귀한 사명을 맡겨 주신 사람 가운데 게을러서 그 일을 제대로 안 하여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게으른 그 사람 굳이 쓰지 마시고 저를 대신 그 자리에 보내주세요. 잘하는 것은 없지만 정말로 열심히 주의 일 하겠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면, 누군가가 사명감을 잃고 냉랭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리를 넘보면서 기도하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을 받습니다. 안정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정만 추구하면 가진 것은 없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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