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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네 번째 셀 말씀과 만남 박승남 201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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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3월 네 번째 셀 가족모임

I. 말씀속으로

1)찬송 혹은 복음 성가를 몇 장 부름 2)제목: [겸손과 평화의 왕 예수님] 3)성경본문: 12:9~19, 9:9~12

1. 림으로 보기

1.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던 나사로를 살려주신 일에 대한 유대 사람들의 2가지 반응이 어떠했는지 각각 말해 봅시다. (9~11)

유대 사람들이 예수가 거기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떼를 크게 지어 몰려왔다. 그들은 예수를 보려는 것만이 아니라, 그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를 보려고 왔다. 그래서 대제사장들은 나사로도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그것은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 사람이 떨어져 나가서,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라

당시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많은 기적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식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무덤에서 살아 나온 나사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마저도 은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사로가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군중들은 모두 흥분하여 예수님과 나사로를 보려고 베다니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2.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과 그 주변의 모습을 살펴보고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요한복음에서는 열렬한 환영을 무엇과 연관시키고 있습니까? (12:9, 17, 18 참조)

당시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예수를 보는 즉시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놀랄만한 광경에 벌어졌으니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한다는 소문을 듣고 유대인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해서 어느샌가 그 숫자가 엄청난 무리로 불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하였다. 종려나무는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길목에 많이 있는 나무였다. 당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들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한 것처럼 예수님을 환영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열광적인 환호성까지 질렀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호산나는 시 118:25절 말씀처럼 이제 구원하소서 라는 말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이러한 일을 예수님이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 주신 것과 연관시키고 있다.

 

3. 사람들이 열렬히 환영하며 환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타셨나요?

14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와 다르게 표현한 것은 다른 복음서는 나귀를 타고 처음부터 입성하셨다고 했는데 요한복음은 백성들의 열광하는 모습을 보시고 나귀를 타신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무엇인가를 대답하시려는 의도로 나귀를 타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분은 상징으로 군중들에게 이렇게 들려주신 것입니다. 그렇다. 나는 왕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바라는 세상의 왕이 아니라, 너희를 구원 겸손한 메시아아적 왕이다.” 진정 겸손하신 예수님께서는 빌립보서 26~8절과 같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다.

 

4. 예수님은 당시 왕들이나 개선장군과는 달리 초라하기 그지없게 어린 나귀를 타실 것을 예언한 구약 성경은 어디인지와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15절을 보십시오.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스가랴 99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는 겸손하시기 때문이다.

 

5. 미국에서 노예해방을 위해 싸운 대표적인 두 인물에 대해 알아 봅시다.

한 사람은 북군의 지도자로서 노예해방을 위해 싸운 링컨 대통령이고 한 사람은 소설을 통해 인간평등을 주장 해리엇 비처 스토 부인입니다. 스토 부인은 조합 교회 목사인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어 가난하고 근심이 끊이지 않는 생활을 했지만 그녀의 마음에 있는 사랑은 식지 않았다. 그리고 노예제를 실시하고 있는 지역에서 18년 동안을 살았던 그녀는 탈출한 노예와 만날 기회가 많았고, 친구들에게 전해 듣거나 자신이 직접 방문함으로써 노예의 생활을 알게 되어 경험을 토대로 그 유명한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이라는 소설을 쓰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주장했고 그로 인해 노예해방의 원동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종전 후 이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스토부인은 사실은 그 소설은 노예제도를 보고 노여워하신 하나님이 쓰신 것이며 자신은 단지 그분의 도구였을 뿐입니다라고 하였고 링컨도 사실은 제가 싸운 것이 아닙니다. 저도 작은 도구였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진정 겸손한 지도자가 역사를 창조한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히 모든 계획과 방법과 과정을 주님께 무릎꿇어 구하였던 겸손한 신앙인들을 택하시어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2. 가슴으로 이해하기

1. 스가랴 9:1~12, 16절을 보면서 예수님이 오셔서 하실 일이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주님이 오시면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고,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꺾으려 한다. 그 왕은 이방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그의 다스림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

1)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고,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꺾으심 2)이방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실 것임 3)피로 맺은 언약으로 말미암아 갇힌(사로잡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건져 내 줌 4)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고 그로 인해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됨

예수님께서 군마가 아닌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신 것은 바로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 주신 것으로 병거와 전쟁을 위한 군마를 없애고 전쟁할 때 쓰는 활을 꺾을평화의 왕은 결코 군마를 타고 오시는 이가 아니라 다만 보잘 것 없는 나귀를 타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시는 분이시다. 이는 군마는 군마로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2. 스가랴서나 요한계시록을 보면 왕되신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표현되며 계시록을 보면 세상 권력을 짐승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어린양과 짐승과의 싸움에서 전혀 뜻밖에 어린양이 승리합니다. 그러면 어린양이 어떻게 짐승 그리고 그를 보낸 용과 싸워 승리할까요?

요한계시록 131,2절을 보면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용은 사탄은 말하고 짐승은 로마 황제로 표현되는 로마를 말하는데, 뿔이 10개는 아구스투스 황제로부터 계산하여 10황제를 말하고, 7곱 머리는 그 중 일 년 미만 제직했던 세 황제를 뺀 숫자로 본다. 그리고 13:11절 땅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짐승은 로마의 11번쩨 황제이자 무서운 박해광인 도미티아누스(주후 8196년 재위)를 말하며 그 유명한 666은 숫자로는 네로를 의미하지만 사실 도미티안을 암시한다. 도미티아누스는 그의 통치 말기 3년 동안 크리스천 4만 명을 살해(박해받은 성도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겠지요)했던 포악한 황제로 93~96년은 사상 유례없는 공포정치의 시기로 불린다. 그런데 그는 결국 음모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아무튼 요한계시록에게 권력을 상징하는 표범과 비슷하고, 곰 발바닥 같고, 입은 사자 입 같다는 등 무시무시한 상징은 다 갔다 붙였다. 왜냐하면 본래 악이란 그처럼 무섭고 공포감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님 당시의 헤롯이나 빌라도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짐승같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야는 왕으로서 오시는 분이면서도 겸손으로 옷 입고 어린 양처럼 오신다고 한다. 그 분이 바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 그 무시무시한 악의 권세를 이기신다고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예언이 성취되어 졌다.

 

그러면 짐승이 이길 것 같은 싸움에 어떻게 어린양이 이겼을까? 그것은 자기를 낮추심으로, 희생하심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심으로 이다. 사실 처음에는 악이, 짐승이 이긴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으니 죽었던 어린양이 부활한 것입니다. 부활은 사랑의 승리, 정의, 빛 그리고 겸손의 승리다. 영화 [부활]을 보면 깊이 느낄 수 있다.

 

3. 조만식 장로님과 주기철 목사님과의 일화를 생각해 보면서 깨닫게 되는 점을 말해 봅시다.

한국의 간디라 불리는 고당 조만식 선생이 오산학교의 교장으로 있을 때에 주기철은 그 학교의 학생이었고 주기철 목사가 산정현교회에서 목회할 때에 조만식 선생은 그 교회의 장로로 시무했다. 그런데 어느 주일 날 조장로님이 예배당에 가려 하는데 국산품장려운동 일을 하고 있는 손님이 뜻밖에 찾아왔다. 그와 급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예배 시간에 늦게 되었다. 도착했을 때는 설교시간이었다. 주 목사님은 설교를 하다가 조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말고 서서 계십시오. 지각하는 학생에게 벌을 주듯이 서서 예배 드리라는 것입니다.” 라고 호령을 했다. 그러자 순간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민족의 지도자요 자기를 가르친 옛 스승에게 그럴 수 있냐는 것이다. 이때 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냥 나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의자에 앉을 것이나 장로님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서서 예배를 드렸다. 설교를 마친 목사님은 서 계시는 장로님 기도하십시오.” 하여 기도를 드렸는데 그 내용이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 날 애국운동한다고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시한 죄를 용서하옵소서. 그리고 목사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면 설교하다 말고 이토록 책망하시겠습니까?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겸손히 회개하였고 교우들은 큰 감동을 받고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진정 주님을 몹시 닮은 아름다운 장로님이시다. 교만은 천사를 떨어뜨려 마귀를 되게 하고 겸손은 사랑으로 천사가 되게 한다.

 

4. 성 프랜시스의 일화와 그가 드린 기도문 [평화의 도구]를 생각해 보면서 느낀 점을 말해 봅시다.

어느 날 저녁 아씨시의 프랜시스 집에 남루한 옷을 걸친 한 나병환자가 찾아왔다. 프랜시스가 문을 열자 그 험상궂은 환자는 혹한에 떨면서 잠시 방에서 몸을 녹이기를 간청했다. 방에 들어와 몸을 녹인 환자는 프랜시스가 막 준비해 놓은 저녁을 함께 먹고 싶어 했다. 그는 식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프랜시스의 침대에서 잠들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프랜시스는 환자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잠시 후 환자는 너무 추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프랜시스의 몸으로 자신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 달라고 했다. 프랜시스는 썩은 진물이 흐르는 환자의 몸을 자기의 체온으로 안아주었다. 이튿날 아침 한 줄기 햇살에 잠이 깬 프랜시스는 어젯밤 자신과 함께 침대에 들었던 환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는 바로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프랜시스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을 찾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 때 드린 기도가 그 유명한 평화의 기도.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후렴/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죽음으로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이후 프랜시스는 모두를 사랑하는 동정과 사랑의 삶을 살았다. 프랜시스는 가난하고 병들고 불행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동정하고 품고 사랑했다. 그에게 있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마땅히 섬겨야 할 주인이었고 특히 나병환자나 버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자들이었다. 그는 나병환자 수용소를 찾아가서 그들의 손에 일일이 입을 맞추며 그들을 품었다. 그의 사랑은 산적 같은 흉악한 자들에게도,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아니 이단들에게도 미쳤고 사나운 이리에게도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에게도 아니 해와 달과 별들에게도 미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에게 찾아온 사람은 그가 친구이든, 원수이든, 살인자이든, 강도이든 반드시 형제로서 맞아 들여야 한다.”

 

3. 삶에 옮겨내기

1. 예수님을 열렬하게 환영한 무리들을 생각헤 보면서 당신은 얼마나 주님을 환영하며 영접하는지 말해 봅시다.

교만한 마음을 내버리고 예수님처럼 마음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해야 하면 주님 주시고자 하는 주님의 평화, 하늘의 평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

 

2. 군마는 군마로 없앨 수 없다는 말씀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26:52)말씀을 묵상해 보면서 당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해 봅시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폭력을 쓰는 자는 폭력으로, 총을 쓰는 자는 총으로, 갑질을 하는 자는 갑질로, 권력을 휘두르는 자는 권력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는 거짓말로, 술에 빠진 자는 술로, 게으른 자는 게으름으로, 술수를 쓰는 자는 술수로, 아부 하는 자는 아부로, 사람을 무시하는 자는 그 무시로 망하며 핵을 쓰는 자는 핵으로 망한다.

누가 욕을 한다고 해서 같이 욕을 해대면 잠시의 마음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그 마음에 평화는 깃들 수 없고 누가 미워하다고 해서 같이 미워하면 속상하고 마음이 답답하고 어두워지고 몸과 마음에 병이 들뿐이다. 우리 주님은 말을 끊고 활을 끊고 평화를 전하시기 위해서 군마가 아닌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오셔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신다. 그러면 우리는?

 

3. 당신은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주로 짐승처럼 보여집니까 아니면 양처럼 보여집니까? 각자 가정, 직장, 사회에서 주로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지 말해 보고 평화의 도구로 살아가도록 하자.

우리는 짐승처럼 뿔로 박고 싸우고, 으르렁거리고 자기 욕심만 챙기고 살벌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양보하고, 사랑으로 받아주고, 용서하고 이해하며 살아야 한다. 어린양으로 살면서도 속에는 왕의 긍지를 잃지 말아야 한다.(5:10 왕노릇 하리로다) 그럴 때 그는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겸손한 자가 진정한 리더이며 진정한 승리자다.

 

II. 돌봄과 기도

셀 가족의 형편을 나누며 아래의 제목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1) 예수님을 마음 속 깊이 영접함으로 그 통치를 받아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처럼 겸손한 평화의 도구로 살아가도록 2)담임목사와 전도사님 그리고 은퇴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과 후원하는 자립대상교회와 목회자들이 지치지 않고 사명 잘 감당하도록 3)당회, 각 기관이 평안하고 화목하도록 4)이 나라 민족의 정의, 평화와 화해와 용서, 통일을 위해 5) 셀 모임과 리더와 입원한 분 등 기도가 필요한 연약한 이들과 셀 가족 식구들 및 각자 기도제목을 위해

. 소식

성 금요일 예배: 25() 오후 8시에 가집니다. 힘써 참여바랍니다. 다음 주일: 부활주일입니다. 새벽기도, 세례식, 오후 3시 연합예배-점촌시민교회) 전도 모임: 다음 주부터 매우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 기도하고 11시부터 전도를 합니다. 힘써 참여바랍니다. (팀장: 박진우전도사) 노회 여전도회 총회: 31() 11시 구미등대교회에서 (실행위원, 지교회 회장 입장) 영화 [부활]: 홈플러스에 있는 메가박스에서 상영되며 상영시간은 12:35, 17:35, 20:00 등입니다. 식사 및 청소담당: 여전도회

 

. 마무리

찬송 321장을 부르고 헌금을 드리고 셀 리더가 헌금기도를 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치고 교제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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