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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 운영자 200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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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승남 목사 설교일 2007년 1월 28일
출애굽기 27장 9 ~ 19절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


 계속해서 우리는 성막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성막 울타리와 문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울타리를 만들라 하셨습니다. 먼저 이 울타리는 세마포 휘장으로 쳤습니다. 그리고 60개의 놋 기둥이 있습니다. 또한 이 기둥의 높이는 2.5m정도(5규빗)가 되게 만들라 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키보다 좀 높은 것으로 밖에서는 절대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고 안으로 들어가야만 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울타리의 남쪽과 북쪽의 너비는 50m이고 동쪽과 서쪽의 너비는 25m입니다. 그런데 울타리의 기둥의 재료는 모두 놋이며 놋 받침에 은고리가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울타리는 1)안과 밖의 구별(요10:7-9) 2)주인의 소유(사43:1) 3)안에는 안전(시91:10) 4)보호를 받고(계11:1-2) 5)공급(요15:7)해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울타리도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놋도 그렇고 세마포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로 구원해 주셔서 우리를 구별하여 자기 소유로 삼으시고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며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13절부터 성막 뜰의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문은 오직 하나의 문이며, 큰 문이며 동쪽 문이고 4가지 색깔을 가진 문입니다. 그런데 이 성막문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특히 양의 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여러분 구약에서 양을 말할 때 함께 나오는 단어는 목장(pasture)이란 단어입니다. 시100:3절을 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에는‘그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래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목장 안에 있는 양(“We are the sheep of his pasture.”)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그분의 목장 안의 양’에서는 강조되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선택되었다는 것이 강조되고, 그 안에 돌보심이 강조되고, 그 안에 행복이 있다는 것이 강조됩니다. 그런데 특별히 강조되는 하나님이 나만을 돌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양 떼를 돌보시는 데 그 중에 내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즉 무리(공동체)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말씀을 보면 믿는다는 것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초장에 초대되어 그 분 안에서 쉬고 보호를 받고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많은 양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여러분과 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초장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것입니까? 목장 밖에 있는 한 마리의 양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복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물 없는 곳에 심겨진 나무와 대조됩니다. 마찬가지로 그 분의 목장 안에 있는 양들은 목장 밖에 있는 양들과 대조됩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선한 목자가 잘 조성해 놓은 목장에서 살고 있는 양들과 울타리 밖에 있는 양의 차이를! 목자가 잘 이뤄놓은 초장에 있는 양들을 말입니다. 먹을 것 걱정 없이 마실 것 걱정 없이 좋은 풀을 먹고 얼마나 토실토실합니까?  맑은 물을 마시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냅니다. 그러나 이 목장 밖에는 풀도 물도 없고, 돌보는 목자도 없습니다. 이 양들은 제각기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그러면서도 사나운 맹수들과 자연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언제 잡혀 먹힐지, 언제 위태한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에겐 함께 살아갈 동료가 없습니다. 물론 스치는 동료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당하면 다 떨어져 버립니다. 이 얼마나 불행하고 불쌍합니까? 초장에 따라 양은 이렇게 불행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수 안 믿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는지, 교회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할 뻔 했는지? 우리는 끝까지 삶과 불행과 행복과 죽음을 함께 하는 성도 아닙니까?
그러면
밖에 있는 양들은 안에 있는 양들이 얼마나 부러울까요? 야, 나도 저 안에 들어갔으면……. 어떻게 하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하면 그 행복한 초장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초장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성막 사방에는 12지파가 진을 치고 있습니다. 한 쪽에 3지파씩입니다. 그러므로 한 쪽에 문 하나씩 내면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 그러나 문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성소에 들어가는 데는 오직 한 문 밖에 없습니다. 200만 명이 사용하는 하나님의 집이 문이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요한복음 15: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문이다.” 여러분 이 말씀을 헬라어로 보면 “에고 에이미 헤 뒤라”여기 에이미는 나는 ~ 이다 영어로는 I am 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에고는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나는 나는 문이다 라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 오직 나만이 문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요즘 사람들은 굳이 예수만 믿어야 되느냐? 예수님만 길이냐?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것은 절대 있을 수 없고 “오직 나만이”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양의 문이십니다. 그 분만이 구원과 생명의 문이십니다. 다른 문은 없습니다. 그 분은 또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리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성령 충만한 베드로도 말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4:12) 다른 이름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소가 아무리 좋아도 문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장이 아무리 좋아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통과해야 만 그분의 목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문을 통과해 목장에 들어간 것을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밖에서 짐승과 자연의 위험에 노출되어 살던 양, 아무런 의지할 데 없이 처량하고 쓸쓸하게 살던 양들이 이 문을 통해서 들어왔을 때 구원받았다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의 어원을 보면 견고하다, 안전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양들이 이 목장에 들어오면 창조주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10:28,29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아무도 그분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부터 하늘나라까지 이 양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견고하고 안전한 삶을 살게 됩니다. 또 이 땅에서 천국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먹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우리는 죽어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받았고 이미 하나님의 품속에서 그 사랑을 먹고 살고 있는 양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문이라 할 때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양들이 드나드는 문, 안식과 꼴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양들을 풀어 놓습니다. 그러면 양들이 이 문을 통해 나갑니다. 그리고 목자를 따라 가는 곳마다 꼴이 넘칩니다. 그리고 사나운 짐승이나 세상의 위험에서 안전합니다. 선한 목자가 언제나 내 앞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저녁에 이 문을 통해 그 안에 들어갑니다. 그 문안에도 꼴이 있습니다. 풍성합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쉼을 얻습니다. 양들은 겁이 많아서 두려움 속에서 잠도 자지 못하고 쉼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무런 공격무기가 없잖아요. 이른바 ‘맹수들의 스테이크’입니다. 맹수들이 보면 양은 다 스테이크 즉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고기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양이라도 목자와 함께 있으면 편히 쉽니다. 그래서 목자들이 저녁에 양들이 우리로 집어넣고는 지팡이를 문에 딱 걸어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의자를 놓고 목자가 앉아 있으면 양들은 지팡이와 목자를 보고 아 이제는 목자가 우리와 함께 있구나 생각하고는 편히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의심이 많은 양들은 있답니다. 이들은 “저거 가지고는 부족해…….”하며 잠을 못 이루는 양들입니다. 양이나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면 그 때 목자는 가서 이름을 부르며 목덜미를 어루만져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스르르 잠이 든다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잠을 자지 못하는 양이 있으면 목자가 그 양에게 가서 올리브기름을 머리에 부어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머리에 기름이 쫙 흐를 때 양은 안심하고 편히 잠을 잔다고 합니다.
여러분 다윗은 목자로서 양을 많이 돌본 사람입니다. 의심 많은 양들을 달래고 잠 못 자는 양들을 잠들게 하고 쉬게 했던 그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자기를 위로해 주시고 쉬게 해 주시고 돌보아 주시고 먹여 주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자기가 원수에게 쫒기고 고통당할 때 주님께서 자기에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원수 앞에서 원수가 보란 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나는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살겠습니다. 바로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막 문은 4가지 색깔의 실로 만들었습니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여기서 청색은 생명 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자주색은 왕권을 의미하는 색깔이기에 왕 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붉을 홍색은 피 색깔입니다. 백색은 순결, 성결, 부활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순결하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생명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그 귀한 붉은 피를 흘려주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분 그래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왕이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이뤄놓은 목장은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버리기까지 해서 이뤄놓은 목장입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양들을 사랑하고 보호해 주는 목장입니다.


그리고 성막문은 작은 문이 아니라 큰 문입니다. 
이 문의 길이는 자그마치 10m입니다. 우리는 좀처럼 10m나 되는 통문을 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구찜 요리로 유명한 아구라는 고기가 앞에서 보면 입만 있는 것처럼 성막의 동쪽은 거의가 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클까요? 그것은 누구든지 들어오라고 크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3:16절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바로 여기에 선교의 당위성이 있습니다.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께 예루살렘  사람도, 온 유다 사람도, 사마리아 사람도 그리고 땅 끝까지의 모든 사람들도 다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진리를 알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2:4) 그리고 로마서 10:13~15절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지을 때 반드시 동쪽으로 문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도 동쪽으로 문을 내었습니다. 그러면 동쪽으로 문은 내면 어떤 결과가 오는 것일까요?


들어 올 때는 서쪽을 보고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나갈 때는 동쪽을 보고 나가게 됩니다.  여러분 서쪽의 첫 인상은 해지는 곳, 어두운 곳, 쓸쓸한 곳, 음산한 곳, 부정적인 곳입니다. 그러나 동쪽의 첫 인상은 해 뜨는 곳, 어둠이 물러가고 광명한 햇살이 비취는 곳,  마귀의 세력이 떠나고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는 밝은 곳, 긍정적인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이며, 축복의 길입니다. 더구나 문 앞에는 유다지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메시야 주님은 유다지파를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양의 문이신 예수님께 나아올 때는 죄를 가지고 왔다가 용서함을 받고 죄를 버리고 갑니다. 문제를 가지고 왔다고 해결을 가지고 갑니다. 슬픈 마음으로 왔다가 기쁜 마음으로 갑니다.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왔다고 평안을 맛보며 갑니다. 기도를 가지고 왔다가 응답으로 갑니다. 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여러분 아구의 입 주변에 독이 있을 수 있지만 예수님께는 결코 독이 없습니다. 아니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렇게 양의 문이 되시고 아름다운 목장을 만들어 주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 생명을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더 풍성히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요10:10) 여러분 주님 안에 풍성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분 안에는 안전합니다. 참된 쉼과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이시고 양의 문이신 주님 안에 들어와 생명과 평안과 쉼을 얻으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그분의 인도와 도우심을 받고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살 수 있는 최대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패배하든 승리하든 주님께로 나아오십시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그분께는 ‘찬란한 계획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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