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의 가슴에는 네모반듯한 모양의 판결흉패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흉패에는 네 줄로 12보석을 물렸습니다. 그런데 제일 첫 번째 나오는 보석이 홍보석인데 그 위에 바로 유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홍보석의 히브리어는 본래 붉은색이라는 뜻입니다. 홍보석은 붉은색의 아주 보기 좋고 매우 비싼 보석인 루비로 정열의 보석이라고도 인데 이러한 붉은 색은 유다지파는 찬송으로 상기된 얼굴, 포도주로 빤 옷, 포도주로 인하여 붉어진 눈,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등과 잘 어울리며 제일 먼저, 제일 좋은 보석에 기록되기에 합당한 이름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는 누구일까요? 다름 아니라 잇사갈입니다.
첫째 줄의 가운데 로 두 번째에는 황옥이 물려있는데 그 위에 바로 잇사갈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잇사갈은 야곱의 9번째 아들로 레아에게서 태어난 5번째 아들입니다. 잇사갈의 출생이야기는 창세기 30장 14~18절에 잘 나오고 있는데 그 이름의 뜻은 ‘값’, ‘보상이 있다’ 또는 ‘고용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보상을 주고 고용하다’ 라는 뜻도 됩니다. 이러한 잇사갈이라는 이름에는 언니와 동생간의 갈등, 당시의 상황, 야곱의 편애 등 모두가 함축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판결흉패에 두 번째로 물려져 잇사갈이라는 이름에 새겨진 황옥은
헬라어로 ‘추구하다’ 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황옥이 귀해서 그것을 찾기 위해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에서 그리 지어진 것이라 합니다.
잇사갈도 레아와 라헬이 서로 아들을 낳으려고 기를 쓰는 가운데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이 추구라는 뜻을 가진 황옥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자 그러면 잇사갈에 대한 축복예언은 어떠합니까?
1, 야곱의 축복입니다.
창세기 49:14~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1.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여기 꿇어앉은 이라는 말은 ‘눕다’라는 말로 쉬고 있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건장한 나귀는 골격이 좋은 나귀란 뜻입니다. 그러면 왜 양 우리 사이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양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건장한 나귀가 양의 두 우리 사이에서 평화로이 쉬고 있는 것은 쉬면서도 양을 돌보는 즉 남을 돌보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이 ‘추구’라는 황옥에 기록된 것처럼 무엇인가 쉬지 않고 선을 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사기 5:15절을 보면 잇사갈 지파가 바락의 군사와 더불어 시스라 군대를 치기 위해 다볼 산에서 기손 강가로 내려갔습니다. 어떤 지파들은 가만히 휘파람이나 불고 있었지만 이 지파는 민족의 구원을 위해 일어서 드보라 바락을 도와 열심히 땀을 흘리며 자기 몫을 한 것입니다.
또 항상 추구하느라고 힘들게 일하는 지파였기에 쉴 곳을 보기만 하면 좋게 여겼고 일을 좋아하는 지파였기에 토지를 보면 늘 즐거워했습니다. 여러분 일감을 보면 짜증을 내는 일꾼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일꾼이 아닙니다. 반면 일감이 없을 때 일감을 만들어 내어 일하는 일꾼도 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일꾼입니다. 잇사갈은 언제나 황옥처럼 추구하는 지파였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성도가 많은 교회는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지파는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는 예언을 들었습니다. 짐을 멘다는 것은 노예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압제 아래서 섬긴다는 것은 곡물, 세금을 바치며 강제노동을 하면서 섬긴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잇사갈은 경작과 조공의 짐을 짊어졌고 소작료와 세금까지 부담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잇사갈 지파는 우직하고 단순하고 온순한 지파이며 상부 지배 계층을 형성하지 못하고 힘든 노동과 농사일에 전념하게 되었고 납세의 의무에 지게 되었으니(왕상 9:21;대하 8:8) 정말 일만 하고 빛은 별로 보지 못하는 그러한 지파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적으로 생각해 보면 안쓰러운 지파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러한 지파는 참으로 소중하기 짝이 없는 지파입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자기 몫을 따라 열심히 일하는 지파로 그야말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충성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를 진리로, 성령으로 자유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종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억지로,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의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 자신이 먼저 섬김을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종처럼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주님이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잇사갈은 똑똑한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귀한 사람입니다. 주님 말씀대로 섬기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비록 세상에서 아무런 상급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늘의 상급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면 세 번째는 누구일까요?
다름 아닌 스불론지파입니다.
스불론은 레아의 6번째 아들로 그 이름의 뜻은 [거함]입니다. 이제 레아가 아들을 6명이나 낳고 보니 야곱은 자식을 보고 싶어서라도 자신의 장막 안으로 자주 와서 자기와 함께 거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거한다는 말은 대단히 깊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고 말씀하는데 여기 거한다는 말 속에는 ‘장막을 친다’, ‘거처를 마련한다’, ‘함께 산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은 다름 아니라 예수님이 사람들과 함께 사시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스불론 때문에 야곱이 레아와 함께 거하게 되듯이 여러분 때문에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더 나아가서 이 사람과 하나님이 같이 거하게 되는 사건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그들의 스불론이 되는 것입니다. 바나바 때문에 사울이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거하게 되었으니 바나바는 참 귀한 스불론입니다. 그리고 바울 때문에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되었으니 바울은 놀라운 스불론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누구에게 스불론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가장 놀라운 스불론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이 이 땅에 스불론하심으로 온 인류와 하나님이 같이 한 장막에 스불론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온 세계를 통하여 많은 사람을 주와 함께 살게 하는 스불론 즉 선교사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스불론에 대한 야곱의 축복은 어떠합니까? 창세기 49:13절을 보면 야곱이 이렇게 축복합니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스불론은 배를 매는 해변, 즉 바닷가 땅, 항구에 거하여 상인과 선원과 바다의 무역상들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경이 시돈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저들이 항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분주히 움직여 먼 시돈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산 사람이 인천까지, 신의주까지 이르고, 일본이나 중국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자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멀리까지 나가는 것입니까?
물론 장사하기 위해 무역하기 위해 나가는 것이지요. 이 예언은 2,3백년이 지난 후 가나안 땅이 각 지파에게 분배되었을 때 이행되었으니 스불론 지파가 차지한 기업의 경계는 바닷가까지 이르렀습니다(수 19:11).
그런데 스불론에게는 또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니 우선 출애굽기 28장과 39장을 보면 대제사장의 가슴에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이 물려있는데 그 중에 스불론 지파는 녹주옥 즉 에메랄드입니다. 이 말의 히브리어는 ‘반짝반짝 빛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지파가 될 것이겠습니까?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어들여서 반짝반짝 빛날까요? 다니엘 12:3절을 보면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의 지혜, 복음의 지혜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주님께 돌아오게 한 자 그들은 하늘에서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불론의 보석 상징을 통하여 스불론이 해변에 있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이 복을 전 세계에 실어 나르기 위해 배를 매어 두는 항구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십시오. 신33:18절을 보면 모세는 스불론에 지파에 대해 이렇게 축복합니다.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그렇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나감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고, 세계 속에 나감을 기뻐하라. 그것을 네 사명으로 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두 곳의 선교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배를 타고 나가는 지중해 여러 나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요단강 건너편입니다. 그 양쪽을 다 선교지로 장악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스불론지역이었습니다. 선교전략상 스불론 지역은 요지 중에 노른자위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축복과 모세의 축복기도는 매우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야곱은 스불론을 향해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고 말했습니다. 매여 있는 배는 이제 어디론가 가려고 준비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뱃고동을 울리며 복음을 싣고 나가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스불론이여 나감을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기쁨으로 나가라, 풍랑과 파도치는 바다의 위험이 있지만 그래도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기쁨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나가서 온 세계에 복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에게는 하늘나라에서 반짝반짝 비취는 놀라운 복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스블론의 사명이 우리 한국교회에, 그리고 바로 우리 남부시민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들 중에 해외에까지 나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일은 총회 적으로 지키는 세계선교주일입니다. 올해는 설날 주일이어서 지키지 못했지만 오늘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이라도 이 날의 의미를 새겨보며 주님의 복음을 널리 증거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에메랄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주보에 보면 선교사는 죽어서 말한다는 글이 실려 있는 것처럼 선교사들의 묘비는 생명력 넘치는 메시지가 되어 방문객들의 영혼을 두드립니다. 묘비명에 담긴 애절한 사랑도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옵니다. 안락한 삶을 마다하고 한국을 찾아온 벽안의 선교사들. 풍상에 씻겨 흔적을 알아보기 힘든 빛바랜 묘비명들이 예리한 표상처럼 가슴에 파고듭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A. K. 젠슨). "나에게는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을 위해 바치리라"(R. 캔드릭).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A. R. 아펜젤러 선교사)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는 나라와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너희가 은혜로 값없이 받았기 때문에 너희도 값없이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처럼 말입니다. 과연 우리가 지금 있는 고향을 떠나 찾아가야 할 제2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
그렇습니다. 우리는 멀리가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내 가족, 내 이웃, 내 직장동료가 복음을 전해야 할 예루살렘이요 유대요 사마리아요 땅 끝입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진정 우리를 에메랄드처럼 빛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는 신명기 33:18~19절에서 잇사갈과 스불론 지파를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밖으로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잇사갈과 스불론은 같은 어머니 레아에게서 나왔으나 성격은 반대였습니다. 스불론은 나감을 기뻐하고 잇사갈은 집 안에 있음을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스불론은 남자다웠고 잇사갈은 여자다웠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스불론 같이 나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잇사갈 같이 집 안에 있는 사람도 요구됩니다. 다 스불론 같이 선교하러 나간다면 누가 잇사갈 같이 남아서 뒷받침하겠습니까? 스불론 같이 외적 선교사도 필요하고 잇사갈과 같이 내적 선교사도 필요합니다.
여러분 비록 우리가 선교사로 나가지 못해도 물질을 보낼 수 있고, 기도로 후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때엔가는 우리 교회도 선교사를 파송할 수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세계비전을 가지고 선교사님들을 위해 힘써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얼마가 되었든 물질로도 후원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는 해외선교를 위해 매월 10만원씩 한국제자훈련원에 송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많은 선교사를 후원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모세는 계속하여 잇사갈과 스불론을 이렇게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백성들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내적 외적 두 선교사 지파가 힘을 합하여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이방사람들까지 불러 모아 성소(聖所)에서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교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에게 전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잇사갈과 스불론의 연합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도 선교를 위해서라도 연합해야 합니다.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같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교회에 목사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교인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같은 마음으로 선교와 전도를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모세는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여러분 밖에 나가서 혹은 안에서 세계비전을 가지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풍부한 것과 보배를 흡수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흡수라는 말은 젖을 빠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젖을 쑥쑥 빨아 먹듯이 그렇게 물질을 복, 부요와 번영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교에 힘쓸 때 하나님은 하늘나라에서 빛나게 해 주실 것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물질의 복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주보용지도 만들어 주시고 선교비도 보내주신 구미시민교회의 도장로님, 그 분은 인쇄소인 하나문화사를 경영하시면서 선교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중국에도 멕시코에도 지사를 설립할 수 있게 하셨고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1월초 다른 이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인데 구미 경기가 좋지 않아 인쇄소 수입이 감소되었는데 대신 멕시코 지사가 잘 돼서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그렇게 역사하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과 세계선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예수님을 더욱 생각하며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신대로 섬김의 삶을 힘쓰며 주님의 지상 명령이신 전도와 선교, 영혼구원 하는 일에 힘써 에메랄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며 잇사갈과 스불론처럼 물질에도 복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되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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