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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온 - 들어 주시는 하나님 운영자 200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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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승남 목사 설교일 2007년 3월 11일
창세기 29장 31~ 35절

시므온 - 들어 주시는 하나님


미국의 한 목사님이 제인이라는 여자아이의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목사님은 아이 방에 잔뜩 쌓인 인형을 보며 물었습니다.


 “이 많은 인형들 중 어떤 것을 가장 사랑하니?”


제인은 몹시 난처하듯 머뭇거리다가 한 인형을 가져옵니다. 뜻밖에도 얼굴이 망가지고, 옷은 헐고, 한 쪽 팔이 부러진 정말 볼품없는 인형이었습니다. 놀란 목사님이 묻습니다.


“이 많은 인형 중에 하필 이 못난 인형을 사랑하니?”


제인은 속삭이듯 말합니다.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으니까요!”




레아는 사랑 받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남편 야곱조차도 그를 사랑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레아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사랑해 주시어 그녀의  태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때 얼마나 기뻤던지“보라 아들이라”하면서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니까, 하나님이 나의 괴로움을 돌아보셨으니 내 남편이 이제 나를 알아주고 사랑해 주겠지~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해 준다 해도 남편은 여전히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레아는 또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습니다. 이후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녀는 계속해서 남편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남편은 그를 사랑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쑥쑥 잘 나아도 자기에게 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인생이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얼마나 우울하고 외롭고 쓸쓸했겠습니까?


그러던 그녀는 4번째 아들 유다를 낳고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제는 그녀의 관심을 남편이 아닌 하나님께로 옮겨 진심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사람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면 어찌 사람에 관심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들 그리고 친구와 이웃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는 만큼 그들이 우리를 사랑해 주지 않을 때, 나아가 우리를 사랑해 주지 못할 때 우리는 더욱 힘들고 피곤하며 괴롭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로, 예수님께로 돌릴 때 우울하던 마음에 기쁨이 있게 되고 진정 우리의 삶에 감사와 찬양이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진정 우리의 기쁨과 감사와 행복의 근원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다른 것 때문에가 아니라 주님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하바국이라는 선지자는 고백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3:17~19) 그리고 신 31:8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그리고 다윗은 시 27: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8절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버리지 않고 성령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도 고아처럼 내 버려두지 않고 함께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3:5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어느 날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께 할 말이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모친이고 동생이냐. 누구든지 하나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모친이며 동생이다.' 그렇습니다. 진정 믿음 안에 사는 사람,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주님의 가족입니다. 그런데 바로 교회도 예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상호 책임지고 상호 의존하는 가족, 서로를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감싸주는 가족.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가족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잘 들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갈이 여주인이자 본처인 사라에 의해 미움을 받아 어린 아들과 함께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같이 살던 남편 아브라함과도 같이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서러웠겠습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빈들에서 정처 없이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가져온 가죽부대의 물이 다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급기여 아들은 기진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덤불 아래에 뉘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이가 죽어 가는 꼴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하면서, 주저앉아서 소리를 내어 울었습니다. 물론 아들 이스마엘도 울었습니다. 그런데 하갈은 소리를 내어 울 수 있었지만 기진안 아이는 소리도 못 내고 울었습니다. 너무도 애처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갈의 소리는 물론 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보내셔서 "하갈아, 어찌 된 일이냐?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이가 저기에 누워서 우는 저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아이를 안아 일으키고, 달래어라.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 라고 말하게 하시고는 하갈의 눈을 밝히시어 샘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이 물을 가죽부대에 물을 담아다가 아이에게 먹였고 아이와 엄마 하갈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은 레아의 소리도 들어 주셨습니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니라 남편의 사랑 받지 못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니 그 소리는 마음의 소리요, 탄식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소리였습니다. 남편 야곱조차도 그 소리를 들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시므온“들으셨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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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말씀을 들으라 하십니다. 세상의 헛된 말, 거짓된 말, 쓸데없는 말 들으려 하지 말고 진리와 생명의 말씀, 위로와 소망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하십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 (사55:1~3)




그러면 이렇게 태어난 시므온은 어떻게 자랐을까요?


시므온이 자기 어머니의 탄식소리, 신음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시므온의 삶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창세기 34장을 보면 시므온은 동생 레위와 함께 할례를 받고 아파하는 세겜 사람들에게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성읍의 추장과 그 아들 그리고 그 모든 남자를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반항할 수 없는 저들을 무참히 죽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성폭행을 당한 여동생 디나를 위해 그리한 것이었지만 너무도 잔인한 짓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웃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감정 나는 대로 다 발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분명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고 상처를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기쁜 일과 웃을 일이 있어도 괴로워하는 사람, 아파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화가 나고 노여워도 그것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므온과 레위는 그렇지 못해서 아버지 야곱으로 하여금 화병에 걸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잊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임종 시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창49:5~6)


시므온과 레위는 분노, 혈기, 노염, 분기가 문제를 해결할 줄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세겜 사람들을 죽일 때는 마음의 스트레스가 시원하게 풀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이들은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야곱은 이렇게 저주했습니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창49:7)


그런데 후에 이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제1차 인구조사가 출애굽 후 광야에서 있었습니다. 그 때 시므온 지파의 수가 59,030명이었습니다.(민1:23) 그러나 광야생활 말기에 조사한 제2차 인구조사에서 시므온 지파는 22,200명으로 줄었습니다.(민26:12~14) 무려 37,100이나 줄어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광야생활을 하면서 시므온 지파가 가장 많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저주요 아픔입니까?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때에는 시므온 지파가 가장 작은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 지파는 허약해 졌고 레위지파는 땅을 차지 못하고 전국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감정처리로 후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은 우유부단, 나약함, 무력감, 좌절, 욕구불만의 표시입니다. 영국의 링컨이요 버림 어린이들의 해방자라고 불리는 샤프테스베리(Lord Shaftesbury, 1801-1885)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를 제어하지 못하면 점차 그것이 전 인격을 패배시킨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고 선한 마음을 지니면 몸에서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이 생겨서 병도 낫고 건강에도 좋으나 반대로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면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나와서 암도 생기고 신경성 위장장애도 오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는 불면증에 걸리곤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정으로 살지 말고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속상하고 화가 나고 괴로울 때 그것을 사람에게 풀려하지 않고 하나님께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는 풀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진정 시켜 주십니다. 마음을 평안하게 하시고 감사한 마음을 주십니다. 혹시 우리에게 원수 갚아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께 가지고 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풀어 주십니다. 분명히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19~21)


여러분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6:27~28)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6:35~36)




여러분 오늘의 세상에도 악한 일은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한 방법에 매우 익숙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듣고 배운 대로 악한 방법으로 악한 일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피차간에 악한 결과밖에 없습니다. 피차 손해보고 피차 망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함께 사는 길이 있으니 그것은 사랑하고 축복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입니다.


어느 날 그 마을에서 가장 악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는 물었습니다.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교회에 나와는 좀 사이가 좋지 않은 어떤 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분의 돈을 빌려 쓰고 갚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중풍으로 쓰러져, 병원에 한 달간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하루에 한 번씩, 그 바쁜 중에도 병원에 들러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나아야 돈을 받을 수 있으니 그렇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게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후에는 올 때마다 과일이며 음식까지 해 들고 와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데 그 때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내가 낫기만 하면 주를 위해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회복이 빨라졌습니다. 믿음의 낫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분은 내 형제 같은 분입니다.


여러분 주님께 기도하십니다. 어려운 사정과 형편,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들,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일들 다 주님께 가지고 나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원수는 물론 모든 사람을 위해 축복하며 사십시오.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십시오. 하나님이 들으시고 보시고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위로해 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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