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서 배 한 척이 침몰했습니다. 그래서 배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 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수영선수였던 한 대학생이 죽을힘을 다해 무려 23명을 구출해 냈습니다. 그는 습니다. 그 사고가 있은 지 수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토레이 박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 옛날 그 이야기를 예화로 들고는 그 때 그 젊은 대학생의 인간애와 용기를 극구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그때의 젊은이가 노인이 된 채 앉아서 토레이 박사의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토레이 박사는 설교가 끝난 후 장본인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때 그 사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구해 준 사람 중 단 한 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그러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어떠한 뜻일까요?
1. 당연한 일이지만 고마운 사람에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죽을 목숨을 살려 주었는데도 감사하지 않은 것일까요? 누가복음 17장은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고침을 받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병에서 고침 받은 것이 얼마나 감격적이고 기쁜 일입니까?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입니까? 그런데 아홉은 각자 갈길로 가버리고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 돌아와 나병을 고쳐주신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눅17:19)
결국 감사한 이 사람은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받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하니 더욱 감사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맥추감사주일을 맞으면서 고마운 사람들을 머리에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 몇 분들에게 감사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드렸습니다. 물론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자 여러분 예배를 마치고 그동안 여러분을 보살펴 주고 여러분에게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전화나 메시지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해 보십시오. 그리고 특히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참으로 감사를 아는 사람입니다. 큰 일에만 감사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감사할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 매일 물과 햇빛이 필요하듯이 행복이 자라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생활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기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밝게 해 줍니다. 복잡한 길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다른 운전자에게 양보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상대방이 짧은 몸짓과 표정으로 고맙다는 뜻을 표합니다. 그럴 때 마음에 흐뭇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양보를 받았음에도 아무런 감사의 표시가 없을 때에는 서운한 마음과 함께 괜히 양보했다는 후회마저 듭니다. 이처럼 작은 감사의 표시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삶을 밝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3. 매일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유명한 의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편작이라는 사람으로 그는 삼 형제 중 막내였고 그의 두 형들도 의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막내인 편작의 이름만 세상에 알려졌고 그의 두 형들은 사람들이 의원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이 편작을 만나 물었습니다.
“그대의 형들도 의원이라는데 삼 형제 중 누가 가장 훌륭한 의원인가?”
“그야 큰 형님이 최고로 훌륭하고 그 다음은 작은 형님입니다. 그리고 저는 가장 수준 낮은 의원입니다.”
왕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편작이 대답하기를 “저의 큰 형님은 환자의 얼굴빛만 보아도 무슨 병인지 알고서 병의 근원을 치료합니다. 그런데 환자는 자기가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고마운 줄도 모르고 형님의 훌륭함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 작은 형님은 환자의 증세가 미미하게 나타났을 때 그 병을 알아채고 치료해 줍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고맙게 여기기는 하지만 누구나 고칠 수 있는 병으로 여겨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증세가 나빠지고 고통을 많이 느낄 때에야 수술도 하고 독한 약도 씁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저를 훌륭한 의원이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생 생활에서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삽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항상 내 곁에 있는 것들과 사람들에게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도 모릅니다. 또한 평소에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큰 복이고 감사할 것들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아파 보면 음식을 잘 먹을 수 있고 건강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가족을 잃어보면 그 가족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지난 98년 화재가 났을 때 예배당에 있던 의자, 방석, 피아노, 마이크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것을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불행이라고 말하는 그 어떤 것을 다른 사람은 행복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내 모습을 지나친 욕심과 불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현재 우리들이 서 있는 그 자리, 우리의 현실을 기쁘게 받아들여 합니다. 주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감사할 것뿐입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 거했던 다윗은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전부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하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TV를 보면 내게 없는 것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사고 싶은 것이 많고 갖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초라해 지고 불행해 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내게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 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 은혜, 생명이 있고 자녀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우리를 늘 대하는 이들을 바라볼 때 그렇게 고맙고 소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가까운 이들에게 감사를 표해보십시오. 부모님께, 아내, 남편에게, 자녀들에게, 성도들에게 목회자에게, 교사, 학생들에게, 찬양대, 구역장, 구역들에게 정말 모두가 소중하고 감사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요 행복은 감사의 나무에서 피는 꽃입니다. 진정 인간관계에서 감사라는 기름을 치면 모든 일이 평화의 기쁨 속에서 부드럽게 잘 돌아갑니다. 그리고 감사는 인간관계를 더욱 더 아름답게 친근하게 만들어 줍니다. 감사로 더욱 뜻 깊은 매일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4. 어렵고 힘들 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감사가 넘쳤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교회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과 소망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생각하면서 그 어려움을 이겨냈고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도 힘써서 참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의 지나온 발자취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어려고 힘들 일들, 가슴 아프고 답답했던 일들, 괴롭고 속상했던 일들, 허물과 죄악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의 사랑과 성도들의 아름다운 헌신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지나온 13년을 뒤돌아보면 여러 가지 많은 시련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의 발자국 속에 주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남부시민교회는 너무도 소중한 주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섬겨야 할 교회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품고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할 일만 남았습니다.
미국의 시카고 대화재가 발생했을 때 시가지 중심에 있던 무디 목사님이 계시는 교회도 불에 타고야 말았습니다. 겨우 속옷 바람으로 불속에서 뛰어 나온 무디 목사님의 손에는 연기에 그을은 성경책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이 때 화재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출동한 기자들이 몰려와서 무디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항상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전지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교회를 불타게 했을까요?”
그 말을 듣고 난 무디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교회를 주십사고 시도를 했소. 그 기도의 응답으로 교회가 불에 탄 것입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짓자면 이 교회를 헐어야 하는데 철거비용이 얼마나 많이 듭니까? 하나님께서 철거를 해 주시니 간단하지 않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이 말에 어이가 없어하던 기자들은 그럼 “그 큰 교회 지을 돈은 가지고 있습니까?"하고 묻자 "나는 수표나 돈이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써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하며 연기에 그을은 성경을 내 보여 주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감사와 믿음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축복합니다.
1948년 손양원 목사님은 에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 엄청난 충격과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슬픔에 짓눌러 있지 않고 두 아들을 장사 지낼 때 유명한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읽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슬퍼하는 기색 없이 장례행렬 맨 앞에서‘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를 계속 찬송하면서 무려 1만원의 감사헌금까지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작은 돈이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난 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안재선에게 손재선이라는 새 이름을 주어 양아들로 삼고, 나중에는 전도사로 키워내는 사랑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이유를 찾아본다면 그 어떤 상황과 조건가운데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의 은혜를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제 손양원 목사님의 그 유명한 아홉 가지 감사를 영상으로 보면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며 정말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나 같은 자에게 순교 자식이 나왔음을 감사드립니다. 2. 허다한 성도 중 이러한 보배를 내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3. 3남 3녀 중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하나님께 드리게 됨을 감사합니다.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두 아들이 순교하니 이 또한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죽어도 큰 복이거늘 주님 전도하다가 총살로 순교했으니 감사합니다. 6. 미국 가려고 큰 아들 동인이가 출국 준비 했는데, 더 좋은 천국에 가게 되니 감사합니다. 7.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 주심에 감사합니다. 8. 내 두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을 생각하니 감사합니다. 9. 이와 같이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 가지의 진리의 믿음과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과 여유 있는 믿음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 주여! 나에게 과분한 큰 복을 주시니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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