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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운영자 200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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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승남 목사 설교일 2007년 8월 26일
출애굽기 34장 1 ~ 10절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본 모세는 격정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다듬으시고 친수로 새긴 십계명의 두 돌비를 땅바닥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래서 여지없이 깨어졌습니다. 그 때 모세는 얼마나 후회가 되었겠습니까? 도대체 자기가 화를 내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얼마나 모세는 그것을 가슴 아파 했겠습니까? 분노가 사라지고 제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는 아! 내가 하나님이 직접 다듬으시고 써 주신 말씀의 돌 판을 집어던졌구나, 내 격정을 견디지 못하여 이것을 던져 깨드렸구나. 나는 과연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말씀 없이 어떻게 이 백성들을 인도하여 광야 길을 가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나 마음으로 아파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던져 버리고 깨뜨려 버립니까? 그래도 모세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분노로 얼마나 말씀을 집어 던집니까? 물론 어떤 이들은 화가 날 때 옆에 있는 성경책을 던져 버리는 이도 있다고 합니다. 참 기가 막히죠. 그런데 그렇지는 않아도 마음으로 말씀을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말씀은 분명히 용서하라 하셨는데 화가 나니까 절대 용서 못해 라고 말합니다. 감사하라 하셨는데 화가 나니까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사랑하라 했는데 화가 나니까 미워하고 저주까지 합니다. 그래서 가정 분위기, 교회분위기, 직장 분위기를 깨뜨립니다. 그리고 그 분노가 사라질 때 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했구나, 내가 이렇게 화를 내지 말았어야 하는데 화를 냈구나. 이렇게 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했는데 저질렀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여지없이 집어던지고 깨뜨렸구나. 하면서 마음 아파합니다. 괴로워하고 후회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격정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하나님의 두 돌비를 집어던져 깨뜨려 버린 모세에게 관용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아침까지 준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라  너무도 감격스러운 말씀입니다. 이는 이제 새롭게 출발하자. 원점에서 다시금 출발하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개를 보시고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주님은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돌비를 만들게 하시고 산으로 올라오라 하시는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큰 기쁨과 감사의 말씀이요 모세에게도 큰 위로와 용기가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험한 세상 살아갈 동안에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우리의 심비에 새겨주신 말씀의 돌비를 깨드려 버리고 발로 밟아 버리고 주님 앞에 나올 때 마다 우리 마음은 터지고 상한 심령이 되어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발로 밟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손으로 집어 던졌습니다. 쓰라린 마음의 고통을 안고 주님께 나올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어 치료해주시고 가슴을 뜨겁게 해 주시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 주십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언제 시내 산에 올라오라고 하셨습니까?


아침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아침은 이른 아침, 새벽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새벽 전에 예비하고 새벽에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도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새벽에 무덤에 올라갔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기를 원하는 이들은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 주님을 만나는 것이 좋습니다. 육의 생각과 육에 붙들린 생활로 더렵혀지거나 때 묻지 않은 시간, 이슬이 맺혀 있는  아름답고 깨끗한 시간에 주님과 더불어 말씀과 기도로 교제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주님도 세상에 계실 때에 하루 일과 가운데서 첫 시간을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셨습니다. 막1:35절을 보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다윗도 시5:3절에서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름도 지나가고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가을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 계절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심령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일찍 깨어 새벽에 주님께 나와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새벽에 내리시는 하늘의 신령한 만나를 거두며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지 않겠습니까? 모세로 하여금 새벽에 올라 오라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새벽을 깨우고 내게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 먼저 하나님과 몸과 마음을 드리고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 보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또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아무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직 모세와만 신령한 교제 가질 수 있도록 장애가 되거나 방해가 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있지 않게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과의 신령한 교제를 갖는 데 그 어떤 것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시간은 우리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근심, 걱정 등도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야곱도 얍복강에서 기도할 때에 혼자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세 제자들을 떼어 놓으시고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드리려고 할 때에 혼자 올라갔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하나님과 은밀히 대화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주님과 내가 오붓하게 대화 할 수 있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에는 TV 라디오를 끄는 것은 물론 전화 코드도 빼 놓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마음을 주님께 향합니다.


시40:6절을 보면 다윗은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말의 원어는 주께서 나를 위해 귀를 파셨으니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곡괭이를 휘둘러 화강암같이 단단한 우리의 머리에 붙은 귀를 파내셔서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정말로 들을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만큼 주님께서 그 만큼 우리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이며 또한 다윗이 그 만큼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주님께 집중했다고 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집중하기 위해서는 장애가 되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과 신령한 시간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과 은혜의 동산에 함께 거닐고 싶으신 것이며 은혜의 바다에서 함께 항해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저런 것들 때문에 신령한 동산에 못 오릅니다. 귀찮아서 안 되고 게을러서 안 되고 힘들어서 안 되고 또 누구 때문에 안 되고 등등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아름다운 교제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위로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을 새겨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 힘과 능력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찾으라. 나를 만나라. 내게 나아오라. 나와 함께 거하자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산 위로 올라오라 하셨습니다. 시내산 밑이 아니라 꼭대기에서 만나자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두 돌 판을 들고 피곤하게 내려온 길을 또 다시 다른 두 돌 판을 들고 올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시내산을 올라 가 본적이 있는 이들은 그 길이 매우 고단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젊은 사람도 힘든 길입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힘든 길입니다. 그런데 노인이 그 돌 판을 들고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습니다. 시원한 그늘 하나도 없는 길입니다. 시원한 물도 찾을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은 하나님이 만나자고 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고 은혜 주시려 하시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가슴에 품고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갔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하였습니다. 비록 고단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일지라도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갔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의 모진 박해를 받으시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눈물 없이 못가는길  피 없이는 못가는길


영문 밖의 좁은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의복 얻으려면   이길만을 걸어야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CTS 기독교 TV에서 내영혼의 찬양을 담당하고 있는 김석균 찬양선교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1.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길은 영광의 길 이길은 승리의길
2. 험한파도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모진 바람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길은 고난의 길 이길은 생명의 길

(후렴)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2X)


그렇습니다. 주님이 오라하시는 길,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멀고도 험해도 영광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영생의 복을 얻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성도들을 주님께 사랑하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여러분 당시 모세의 나이는 80세입니다. 하지만 그는 넉넉히 등산하였습니다. 그리고 34장 28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40일간 완전 단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지친 모습이 없었습니다. 29절에 그는 중거의 두 판을 손에 들고 거뜬하게 내려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합니까? 주님이 힘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의 길을 가는 성도들을 주님이 책임져주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작년에 D12 시스템을 배워 우리 교회에 실시하고 있습니다. 전도와 양육과 제자훈련입니다. 1기 13명 2기 6명이 수료하였습니다. 제자훈련 1학기에 6명이 수료하였습니다. 그리고 2학기 3명이 수료하였습니다.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은 것은 이사 간 이들이 있기도 했고 또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이들이 있기도 했고 또한 훈련이 어려워서 그러하기도 합니다. 배운 보람이 있습니다.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주님의 귀한 제자, 군사, 사도로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위해 총12주로 진행되는 열린모임은 소그릅 전도전략으로 3~4명이 한 팀을 이루어 한 지역을 거점으로 하여 누룩처럼, 겨자씨 처럼 그 지역을 장악해 가는 성경적인 소그룹 침투전도입니다. 이것은 주님과 사도 바울의 전도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위해 첫 주는 7명의 태신자를 정하고 둘째 주는 그 중에 이번에 꼭 전도하고 싶은 세 사람을 다시 정합니다. 그 세 사람을 베스트라고 하며 셋째주부터는 6단계 관계맺기(오이코스)에 들어갑니다. 매주 만나서 관계를 맺다보면 베스트의 마음이 열려 열린 모임에 초청되어 복음을 듣고 결신하여 교회에 등록하게 됩니다.


양육의 기쁨은 구원의 확신, 사죄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인도와 승리의 확신 묵상의 시간 등으로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며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일꾼이 되도록 그 기초를 다시는 양육과정입니다.


이어서 제자대학으로 들어가 1학기 제자훈련으로 제자훈련이란 제자로의 부르심을 깨달으며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훈련받는 시간입니다. 제자의 삶을 통해서 제자로의 부르심과 가치에 눈을 뜨고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로 세워지게 됩니다.


2학기 군사훈련은 자신의 신분이 군사임을 자각하는 시간입니다. 군사로 부르셨음을 깨닫고 순종하는 시간입니다. 군사의 제일 되는 원칙은 순종입니다. 오직 명령에 복종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군사는 자기를 철저히 부인합니다. 부르신 자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며 부르신 자의 소망이 곧 나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며 자기 생활에 매이지 않고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학기 재생산 훈련 일명 사도훈련은 재생산 사역자로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사과나무의 진정한 열매는 사과가 아니라 또 다른 사과나무이듯 제자훈련의 진정한 열매는 재생산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바로 재생산을 하는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훈련을 마치면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 셀 가족모임 리더가 되어 더욱 아름답게 그리고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게 됩니다.




여러분 모세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 판을 손에 들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갔습니다. 못 간다 하지 않고 힘들다 하지 않고 괴롭다 하지 않고 올라갔습니다. 그럴 때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시어 모세와 함께 서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듣게 되었고 다시금 십계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여러분 준비된 마음에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게 됩니다. 진정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모세처럼 순종하여 주님의 크신 은총을 받고 주님의 교회와 이 지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며 말씀하십니다. 새 마음으로 나오라. 이제 새롭게 출발하자, 내가 너에게 은혜를 주려 하노라. 내가 너를 쓰려 하노라



주보에 실은 고훈목사님의 우리에게는 구월이 있습니다 라는  시를 읽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보라


     팔월 끝자락으로


     떨어지는 여름


     무덥던 세월이 이렇게 진다




     영원한 것은


     오직 열매뿐


     가을 문턱에 서서


     거두러 오신 그 분


     기다림으로 설레고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 나무에는 무엇이 열렸는가


     부러워만 했는가, 비난만 했는가




     그러나


     우리에게 9월이 있다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아


     주님의 말씀


     주님의 사랑


     주님의 은혜


     주님의 마음을 깊이 품어 


     아름다운 열매를 가득 맺은 


     알찬 심령을 


     주님께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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