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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14:1~7) | 박승남 | 2008-11-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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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으로 첫 번째 절기인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따라서 교회력으로는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일은 올해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결국 오늘은 시작과 마지막을 동시에 생각하게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희망차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착잡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시작이란 언제나 희망이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근심과 불안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어떤 여인은 자신이 암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40년간 동안이나 걱정하고 고통당하다가 마침내 70세에 폐렴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걱정할 필요가, 걱정해서도 안 되는 일을 가지고 40년간 암이라는 공포 속에 살았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염려를 만들고 또 염려 없는 것을 걱정하고 살기도 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정말 근심, 걱정 할 것이 태산 같이 많은 것 같은 분들도 있습니다. 어느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하루에 600만개의 수면제가 팔린다고 합니다. 하루에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수면제를 먹어야 잡을 잘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걱정과 고통과 흥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 근심 걱정에 빠져 있습니다.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 위해 나가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리라는 말을 들었고, 그리고 예수님과 이별해야 하고 뭔가 모르지만 예수님에게 어떤 불행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별들의 이름이 많지요. 그런데 제일 슬픈 별이름은 무엇인지 아세요. 이별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이별에 대한 불안과 근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워합니까? 지금 어떤 근심 걱정이 있습니까? 자녀문제입니까? 돈 문제입니까? 건강문제입니까? 아니면 불확실한 미래 때문입니까? 그러면 이러한 문제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분은 [근심이여 안녕]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말들을 합니다. 하루의 근심은 하루에 끝내라. / 어떤 방법으로든 내일을 위해 생각을 하기는 해야 한다. 그렇다. 주의 깊게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염려해서는 안 된다. / 현명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새 날이다. /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 / 바쁘게 지내라,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가장 좋은 약이다. / 당해야만 될 일은 가볍게 견디도록 해 보라. / 쏟아진 우유를 한탄하지 말고, 톱밥을 켜려고 애쓰지 말라. / 지금 당신이 자기라고 판단하고 있는 그것이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당신은 형성된다. /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에 관한 생각에 단 1분이라도 허비하지 말자. / 남을 모방하지 말자.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답게 살자. / 남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를 일을 매일 하나씩 하자. / 억울한 비판 속에는 숨겨진 칭찬이 있다. 아무도 죽은 개를 걷어차지 않는다. / 그저 웃자. / 질서는 하나님의 제1법칙. / 일을 중요한 순서대로 처리하라. / 그러면 근심 걱정하는 이들에게 우리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여러분 주님의 말씀은 그 말씀 자체가 힘입니다. 제가 하는 말, 또 남들이 와서 위로하는 말 별로 힘이 안 되도 주님의 말씀은 근심하지 말라고 하면 근심이 사라져 버리는 힘을 지녔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여 걱정하고 염려하다가도 주님께서 오셔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던가,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만 하시면 그처럼 무겁게 마음을 누르고 있던 근심걱정이 안개 걷히듯 사라지거든요. 주님의 말씀자체가 능력이지만 그런데도 주님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친절하게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염려하지 말아야 할 구체적인 증거까지 확실하게 제시해 주시면서 말입니다.
1.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나를 믿으니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해 주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긴 하지만 하나님처럼 믿지는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 믿느냐 그러면 나도 믿어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으니 내 말을 하나님 믿듯 믿으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시는 것이며 이 말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근심은 불신앙에서 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염려를 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피심을 믿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 것이냐의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 걱정에 매여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걱정이 생기거든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사람이 걱정을 하는 이유는 일을 한 가지 방향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좋은 방향이 아니라 나쁜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2. 이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2~3절) 여러분 이 말씀을 한 마디로 말하면 무슨 말씀일까요? “내가 너희의 미래를 준비해 두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주는 분이십니다. 믿습니까? 어디까지요. 하늘나라까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천국까지 준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몇 년 앞도 모릅니다. 우리는 준비해 놓는다고 하지만 지나보면 헛것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천국까지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천국까지 준비해 놓으셨다면, 그곳까지 가는 모든 과정도 준비해 놓으셨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희들의 영원한 문제까지 준비해 놓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힘과 용기가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다른 나라에 가는데 누가 그곳에서 살 것을 다 준비해 놓았다고 하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한 모든 것을 다 내가 준비해 놓았다.”그러므로 불안과 근심이 엄습할 때에, 어찌할 바를 몰라 막막할 때에 “나는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다 나를 위해 준비해 놓으셨다”라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두렴 없이 우리는 힘차게 앞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때 걱정 근심으로 찼었던 사도 베드로는 후에 그의 서신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벧전1:6)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그리고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사는 사람에게는 걱정이 늘 있습니다. 생각이 없이 사는 사람은 걱정을 그대로 희색 시키지 않고 받아 걱정을 걱정합니다.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그 걱정을 좋게 해석하려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걱정을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재료로 생각을 합니다. 잠깐 걱정하게 된 일로 인해 오랫동안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걱정에 너무 집착하거나 매이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염려를 다 주님께 맡깁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 좋은 길을 준비하신 것을 믿고 말입니다. 야고보는 1:2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걱정거리가 생기면 걱정에 매이지 말고 오히려 이 일로 인해 생길 하나님의 복을 생각하고 크게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걱정을 잘 소화하며 사는 사람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 사람이 왜 걱정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걱정을 걱정으로 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복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잃은 것을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주님이 다 준비해 두셨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3.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까? 염려하지 말아야 할 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분이 길(The Way)이기 때문입니다.(I am the Way.) 여러분 우리가 서울에 가야할 일이 있다면 서울 가는 것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 걱정하지 않습니까? 거기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길이 없는 길을 가야 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미래를 살아갈 뚜렷한 길이 없었습니다. 미래는 무작정 가보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래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젠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염려하지 마십시다. 그분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가보십시다. 여러분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준비되었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우리는 무작정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 되기에 그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있는데 제 자식이 오늘 무엇을 먹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염려하면 밉잖아요. 이놈이 나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물론 부모는 못해 줄 수도 있습니다. 가난해서, 힘이 없어서, 무심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제거해야 할 것이 바로 염려, 걱정입니다. 도무지 염려하지 마시고 주님이 놓으신 그 길을 걸어가십시오. 아프리카 콩고에서 선교하신 스티븐슨선교사님이 이러한 글을 남겼습니다. 이분은 독특하게도 콩고 정글 한 복판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만나 전도한 것입니다. 누가 거기를 옵니까? 그런데도 그 한 가운데 집을 짓고 산 것입니다. 어느 날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백인 청년 두 사람이 그 오두막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들은 비바람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청년들이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강으로 가야 하는데 길을 알려주십시오.” 그 때 선교사님은 “유감스럽게도 그리로 가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꼭 그리로 가야 하는데요. 방향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여기서는 방향도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이들은 절망이 빠졌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때 선교사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내가 당신들을 인도해 가면 됩니다.” 그리고 이 선교사는 청년 두 사람을 데리고 가면서 나무와 각종 식물로 뒤 엉긴 정글에서 인생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 청년들과 같습니다. 방향도 보이지 않습니다. 볼 수도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인생의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포와 불안이 우리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고민하지 마십시오. 길이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염려하지 마라 길을 딱 하나 밖에 없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는 길이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그 길(the way)이 생명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불행으로나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0절 말씀처럼 생명으로 인도하되 더 풍성하게 인도하시는 길이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길 되시는 그 분이 내 곁에 계시면, 그분이 내 손을 잡고 인도하시면 아무 걱정 없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기를 때 친구가 생겼다면 우리 부모들은 무엇을 걱정합니까? 이 친구가 나쁜 친구인가 좋은 친구인가? 우리 아이를 좋은 데로 인도할 아이인가, 나쁜 데로 인도할 아이인가를 염려합니다. 그래서 첫 묻는 말이 그 아이 좋은 아이냐? 나쁜 아이면 사귀지 못하게 합니다. 특별히 결혼 상대자를 데리고 왔을 때 더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이 아이가 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아이인가 아닌가를 생각하지 않습니까? 인생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생명으로 인도하시고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도록 행복하게 인도하시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 길은 진리의 길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미래, 주님의 인도는 확실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확실한 미래로 인도하시는 확실한 길(the way)이십니다. 그것도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을 만나서 실패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빈손으로 돌아선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주님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진리나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미래를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과 함께 걸으십시오. 이슬람권에서 들려지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 저기 다니면서 내 말을 보셨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웃습니다. 왜 일까요? 말을 자기가 타고 있으면서 묻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명백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 분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방황하며 말이 어디 있느냐고 진리가 어디 있고 행복이 어디 있고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행복, 우리의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변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굳게 의지하고 그 분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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