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빈 방을 준비하십시오 (눅2:1~7) | 박승남 | 2008-12-08 | |||
|
|||||
|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때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모든 관할하고 있는 지역의 사람에게 호적을 등록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세금을 걷을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가서 등록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요셉도 호적을 하기 위해 자기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임신 중인 마리아와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해산할 날이 되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물론 그 아들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낳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 즉 말먹이를 주는 밥통에 눕혀 두었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 말을 보면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라고 되었습니다. 이를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기를 말구유에 눕힌 것인 산모인 마리아와 요셉과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방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분 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메시야 이신 그리스도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바로 그 일입니다. 그런데 그 예언의 말씀을 듣고 그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기 예수님, 메시야를 만나지 못했고 오히려 이방에서 온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경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는데 예수님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못 만났다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요? 방이 없었기 때문에, 방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이 문제입니다. 저희가 이곳으로 와서 좋은 것은 방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부방도 있고 사랑방도 있고 제자 방도 있고 식당도 있고 ……. 물론 아직 아쉬운 것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 놓고 기도할 수 있는 기도 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습니다. 또 차를 마시며 친교 할 수 있는 친교 방이 제대로 없습니다. 어쨌든 방이 중요합니다. 방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방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방이 없었다는 것은 오늘 우리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분명히 예언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3:15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22:17~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이사야 7:13~14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처럼 하나님은 오랫동안 여러 차례 반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방을 준비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오랫동안 예언의 말씀을 받았는데 왜 방을 준비하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내지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을 믿을 수가 없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람은 그렇지 못한데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이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방을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2. 성탄절 아기 예수께서 말구유에서 태어났다 하면 우리 머릿속에는 아름다운 정경, 풍경이 떠올려집니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십시오. 그 때 마리아와 요셉이 바로 나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지금 출산해야 하는데 방이 없다면 그렇게 아름답기만 할까요? 얼마나 당황스럽고 걱정이 되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요셉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것입니다. 여기 저기 문을 두드리며 방 좀 없냐고? 방울 구하려고 말입니다. 다급하고 생명의 위협이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출산한 방이, 아기 예수를 모실 방이 없었습니다. 이는 요셉과 마리아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한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배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것을 정리해 보면 사람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 무관심했기 때문에 방이 없었던 것입니다. 3. 수요가 많으니까많은 사람들이 호적등록하기 위해서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왕인 다윗의 고향입니다. 그러니 뼈대 있는 마을입니다. 그리고 거기 출신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또한 비율로 보면 어느 도시. 마을 사람보다 많이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여관방이 몇 개나 있었겠습니까? 요즘말로 민박동원해도 안 되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방이 부족한 것인데 그 만큼 그 당시 상황은 복잡했던 것입니다. 결국 복잡한 삶으로 여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빈 방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에는 항상 방이 하나 비어 있다.” 이 얼마나 여유스러운가요? 좁은 데서 여유 없이 문화적 혜택 누리며 사는 것보다 허술한 움막이라도 방 하나 비어 놓을 정도로 여유 있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공간적 방 하나 준비해 놓자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자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 믿는 믿음을 싫어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조금 잘 산다고 신앙생활을 잘 하지 않습니다. 신앙을 거추장스럽게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회, 그래서 신앙은 어떻게 하든지 내 팽개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시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의 약속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잘 안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성탄절을 맞고 뭐를 하면 방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시고 싶어도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성탄절은 그냥 세속적으로 즐기고 돈 좀 벌고 그렇게 지내면서 지내는 것이지 신앙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요즘 우리는 어렵다고 합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성탄절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경제가 어려우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돈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불행한 것입니까? 다윗은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주님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시16:2) 또 시23: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는 목자였기에 목자가 하는 일은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목자는 어떠한 일을 했습니까? 1. 목자는 먹을 것과 안식처, 그리고 기본적인 필수품들을 제공해 줍니다. 2. 목자는 보호해 줍니다. 그는 우리가 적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도록 방어해 줍니다. 3. 목자는 인도해 줍니다. 목자는 양들이 혼란된 상태에 처하게 되어 어디로 가야 될지를 모를 때에 인도합니다. 4. 목자는 고쳐 줍니다.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고쳐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만이 자기의 복이 되시고 또한 주님이 자기의 목자가 되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를 위하여 위에 나열한 네 가지를 하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시며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시되 천국까지 인도하시며 우리의 삶에 잘못된 문제들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요. 아니 임마누엘 하나님을 더욱 믿고 의지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여러분 빈방을 준비하십시오. 오늘 우리 성도들이 빈방을 준비하는 것이 왜 중요하냐고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믿음을 갖는 것이 빈방을 준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2. 어려운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지요. 글쎄 그 당시 베들레헴 사람들의 모습과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면 비교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자세, 이기적인 자세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 베들레헴에 살던 유대인들이 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을까요? 아니면 2008년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일까요?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우리가 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그 만큼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대해 더 무관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시 아주 난처하고 당황했던 요셉과 마리아처럼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어렵다고 하는 이때에 우리가 성탄절을 바르게 지내고 성탄절의 의미를 바르게 선포하는 것은 빈방을 준비하는 것인데 그것은 나도 어렵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고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거리의 성자 방애인을 아십니까? 1909년에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보통학교까지 졸업하고 기전여학교 교사로 봉직했던 신여성이었던 방애인은21살 나이에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화려한 신여성의 모습을 벗고 순수하고 검박한 단벌옷을 갖고 정신병자, 나병환자, 고아들을 돌보고 목욕시켜 주고 업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해를 당한 이들에게 그의 물품 대부분을 팔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녀는 자기 몸을 돌보지 못해 1933년 24세로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는데 이 때 그가 돌보던 고아들이 상여를 매고 공동묘지로 향했고 전주 시민들은 멀어져가는 거리의 성자 방애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지켜보았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짧고 굵은 삶의 모습은 오늘까지 잊히지 않고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번 성탄절을 어떻게 지내시겠습니까? 어떻게 계획하십니까? 우리가 방애인같은 사람은 되지 못한다 해도 아주 작은 것, 사소한 것이라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한 관심을 표현해 보십시오. 길을 가다가 구세군 모금함을 보면 단 돈 얼마라도 넣어보시고요. 이웃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목도리라도 하나 사 줘보십시오. 아니면 작은 것이라도 여러분 나름대로 해 보십시오. 마음이 굉장히 흐뭇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들 때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다른 때 안했다고 해도 금년에는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고 가족들끼리 대화하시면서 이런 것들을 잘 계획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빈방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어느 방에 오실지 모릅니다. 3. 복잡한 생활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고 했는데 그렇습니다. 삶이 복잡하면 신앙적, 영적으로 메말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삶이 막 복잡하고 바쁘고 그러면 그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 때 신앙적 손실을 많이 보게 되고 원치 않는 어려움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많이 바쁩니다. 복잡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님을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 속에서 은혜가 촉촉하게 임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께만 무리하게 요구만 하는 것은 아닌가요? 여러분 삶이 복잡하다보면 마음으로 신앙적으로 여유가 없어집니다. 그 말은 예수님을 만날, 예수님을 모실 마음의 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곁에 오셔도 나 지금 바빠요 하고 그냥 지나갈 수 있습니다. 빈방을 준비하시는데 그것은 대림절 절기인 이 때 만이라도 신앙적인 유익을 얻자고 하는 것이므로 이 때 만이라도 우리의 삶을 좀 단순화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았던 예수님도 생각해 보고 쓰지 않았던 시간을 예수님을 위해 좀 써보면서 마음에, 삶의 여유를 가지면서 예수님을 모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빈방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20년 이상 성탄절이 되면 어김없이 오르는 연극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도 많이 공연된 바 있는 연극 <빈방 있습니까?>입니다. 이 연극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우리나라에서 극화한 것입니다. 연극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성탄 극을 준비하던 어느 교회 고등부 연극반에서 연출 교사는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능이 좀 모자라는‘덕구’에게 조연급인 여관 주인 역을 맡깁니다. 모든 면에서 소외 되던 덕구에게 자신감을 주려는 연출 교사의 배려였습니다. 마침내 성탄절 전야에 무대의 막은 오르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 연극은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문제의 여관 장면에 이르러 덕구가 사건을 일으킵니다. 빈방을 애타게 찾는 요셉과 만삭의 마리아를 보고 여관 주인인 덕구는“빈방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차마 못한 것입니다. 그 대신에“가지 마세요. 우리 집에 방이 있어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마구간에 가지 마세요”라고 외치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객석에선 폭소가 터지고 연극은 엉망이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극이었음을 알게 됩니다.여러분에게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빈방이 준비돼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 그리고 삶의 현장에 예수님을 언제든지 모셔 들일 수 있는 정결한 방을 예비하는 성탄절이 되길 기도합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