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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삼상7:12~14 박승남 200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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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올 해를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교회적으로 우리는 큰 기쁨과 영광을 얻었습니다. 아름다운교회라는 새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여 봉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윗도 얻지 못한 영광을 우리는 얻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꿈같은 일이요,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재정적으로도 채움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은 무엇입니까? 올해의 특별히 의미가 있는 일, 소중하고 특별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지명에는 특별한 사건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지명이 있습니다. [에벤에셀]이라는 지명도 그 같은 경우입니다. 이 에벤에셀이라는 곳은 선지자 사무엘이 기념비를 세운 곳이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곳이었습니다. [에벤-하-에젤]이라는 말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다. 에벤에셀- '에벤'은 "돌"을 가리키고 '에셀'은 "호위", 또는 "도움"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좋은 남편이 아내를 보살피는 행위", "강자가 약자를 무조건 보살피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편과 같은 친밀함으로 아내와 같은 이스라엘을 도우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릴 한 사람 한 사람을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올 해를 보내고 이제 며칠 후면 새로운 해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돌을 취하여 세우는 일은 특별한 사건을 기념하든가 어떤 사건을 기억하기 위하여 세웠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으로 진격할 때에 요단강을 마른땅으로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 물속으로 들어갈 때 물이 물러나고 온 백성들은 마른땅으로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가나안 땅에 밀과 보리를 거두는 때로서 요단강물이 언덕 위까지 넘칠 때였습니다. 물이 줄어지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요단강에서 12개의 돌을 취하여 가지고 [길갈]에 쌓아놓았습니다. 이것을 보는 많은 후손들이 "이 돌이 무슨 돌이냐?"고 물으면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에벤에셀'이라는 돌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감사하여 세운 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속적인 은혜를 요청하는 마음을 모아 세운 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만 계속 머물겠다는 헌신을 다짐하는 뜻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말씀은 시간적으로, 지금 이 시점에 이르도록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뜻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래 오래 우리를 참아주셨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시시 때때로 하나님을 원망하였으며, 하나님 앞에 죄만 지었고, 우상을 섬겼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여기까지 인내로 참으시고 계속 도움의 손길만 펼치셨습니다.

벧후3:15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도우심이 아니었으면 여기에 구원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게 깨달아야만 은혜라고 합니다. 엄청난 은혜만이 은혜는 아닙니다. 축복의 장맛비만 은혜가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맺히는 이슬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새벽에 이슬이 맺히지 않았다면 우리 주변에 생물들은 다 말라죽었을 것입니다. 일상생활 중에서 언제나 받아왔고, 앞으로 받을 은혜에 대해서는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일 년간 받은 햇빛을 값으로 계산해보시겠습니까? 그 동안 마신 공기를 돈으로 계산해보겠습니까? 일 년간 마신 물을 값으로 환산해보시겠습니까? 이런 것은 당연히 주어지는 은혜라고 말씀하실 것입니까? 그러니 감사가 없고 원망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무사하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 아닙니까? 이것은 더욱 크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나서 된 줄로 착각하고 감사한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평범한 중에, 일상생활 중에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고요한 중에 주시는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평범한 중에 주시는 은혜, 누구나 다들 받는 것 같은 은혜, 아직 어려운 형편에 처해지지 않은 평안함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엄청난 사건이 터져야 감사하는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작은 사건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고요한 중에 역사하시는 적은 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 능히 감당케 하시는 역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오래오래 참으시는 은혜에도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인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온 지도 벌써 250년이 지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느 듯 우상숭배에 빠져들었고, 가나안 사람들을 본받고 있었습니다. 농경 사회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바알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온 백성들로 하여금 미스바에 모이라고 하였습니다. 미스바는 새로운 영적인 결단의 장소였습니다. "회개하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외쳤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고 외쳤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온 백성들은 회개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완전히 망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도 사라질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주저할 여유가 없습니다.

미스바 부흥회의 특징은 회개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여호와 앞에 물을 길어 붓고 금식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물을 붓는 것은 마음을 쏟아 회개하고 정결함을 받는다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사무엘은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부흥회의 특징은 온전한 희생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헌신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도 물질도 건강도 다 받쳐 헌신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들은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이라면 간담이 녹고,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 앞에 풍전등화의 순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혀 무장이 되어 있지 않았고, 블레셋은 이미 철 무기로 중무장하였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면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친히 나가 싸우셨습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올라왔습니다. 그 순간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하여 도주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의 기념비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 누구도 선뜻 돕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사람들은 이해관계에서 덕을 볼 수 있을 때에 도우려 합니다. 사람의 도움은 처음에는 돕지만 나중까지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도우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도우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이 도우실 때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종교적으로 암흑 시기라고 할 수밖에 없는 시기였습니다. 신앙적으로 재무장하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니 하나님은 강적 블레셋이라도 물리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위기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극복하였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뜻하지 않은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분은 가정생활에 위기를 만날 수가 있고 어떤 분은 사업에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에벤에셀이 되십니다. 반드시 도우십니다. 위기를 모면하게 하십니다. 블레셋의 군대가 의기양양하게 진군하여 왔지만 하늘로부터 터져 나오는 우렛소리에 혼비백산하여 어지럽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군하여 대승리를 얻었습니다. 승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무장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문제입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 아버지가 도우시는 데는 반드시 이기고 또 이기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도우시면 승리합니다. 사업에도 승리합니다. 가정에도 승리 합니다. 자녀 교육에도 승리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도우실 때 잃은 땅도 회복하고 평화를 누렸습니다.

여러분, 에벤에셀의 은총으로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잃은 건강도, 잃은 재물도 잃은 행복도 찾게 될 것입니다. 잃은 신앙을 회복하면 참된 평화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사모할 때 도우셨습니다. 삼상7:2절에 보니까.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하였습니다.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찾지 아니 하였습니다. 사모한다는 것은 사랑 한다는 말입니다. 열정이 없는 믿음이라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알맹이도 없는 껍데기 신앙 이것은 감동을 주지도 못하고 확신도 기쁨도 만족도 없이 살아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모하는 열정이 없어졌다고 할 때 외식적이고 겉만 화려한 종교인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밖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기에 더 가까이 찾고 기도하는 것 이게 진정한 믿음입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그에게로 마음을 다 쏟는다는 뜻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50:15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우리는 연약합니다. 부족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지만 돌이켜 볼 때 그렇게 하지 못한 허물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화를 돌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우리 모두는 기도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별종인간입니다.  왜 우리가 기도를 합니까?  기도야말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요,  하나님의 보좌를 울리는 벨이기 때문입니다.  위기에 처한 백성을 구하는 무기가 기도요, 능력이 기도요, 에너지가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한 해를 보내면서 너무도 감격스럽지요?  사무엘처럼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블레셋에서 구출 받았던 이스라엘,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말할 수 없이 크신 은혜인데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했던 것처럼 우리의 앞날이 승리할 수 있어야 되겠는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은 무기가 아니고 인간의 전술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승리도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삼상7장이 교훈을 합니다.  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라고 했고, 10절에도 보면 "여호와께서"라고 했습니다.  12절도 보면 "여호와께서"라고 했고, 13절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에 소망이 있게 되었고, 꼭 마찬가지로 우리의 소망도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증언하기를 "하나님의 백성이 결코 망하는 법이 없느니라"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갓 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인간의 모든 것들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박 넝쿨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열 번을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따라서 넘어졌다가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칠전팔기(七顚八起)하는 백성이라고 이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갈팡질팡 허둥댈 수가 있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마침내는 천국에 다 이르게 될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 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빌4:13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에벤에셀 하나님이신 것을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금년이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올해 영신예배와 신년 주일예배를 드린지가 엊그제 같은데 한 해가 우리 곁을 떠나 막을 내리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할 때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에벤에셀 하나님이신 것을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에벤에셀 하나님이시고, 우리 민족들에게도 에벤에셀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므로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잊지 않고 겸손히 의지하면 아무리 어려운 경제 환경도, 아무리 어려운 일도 능히 극복할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데 어느 백성보다도 가장 많이 받은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은혜를 까맣게 잊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땅이 쪼개져 생명들이 그 땅 속으로 묻히는 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한 삶을 산다면 이와 같은 징벌이 우리에게는 없다 아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철저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을 믿습니다'하는 이러한 믿음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리고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책망을 들은 적 있었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돌이켜 보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지난날 의심했기 때문에 실패한 적은 없었습니까?  믿음이 작았기 때문에 죄악의 물에 빠진 적은 없었습니까?  생각하면 다사단한(多事斷限)했던 한 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13절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라고 했습니다.  여기 블레셋은 우리의 삶 속에 늘 도전해 오는 사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간교한 계교라 할 수 있습니다.  위험, 환난, 곤고, 역경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이 그것을 막으셨다고 하는 말씀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길지 모릅니다.  물론 백년 살기를 모두 원합니다.  그렇지만 "너의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겠느냐"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염려하므로 내 생명을 5분 더 연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모든 재앙을 막아주시면 승리하는 한날 한날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복을 주셨는데 모든 어려움들이 원상으로 회복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질병이 건강으로, 가난이 풍요로움으로, 전쟁이 평화로 회복되리라는 복된 선언인 것입니다.  이 선언이 미리서 우리 눈앞에 있음을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본문말씀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4절인데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편이라고 하면 이 아모리 사람은 상대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원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김씨와 박씨 사이에 담벼락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이 이웃 사이에,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평화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 사이에도 평화와 화목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간절히 기도해야 될 것 있습니다.  새해에는 막힌 남북한에 대화의 물꼬가 터지고 화해와 평화의 통일의 기운이 넘치기를 말입니다. 또한 동서가 더욱 화합하는 평화가 있게 되기를 말입니다. 요즘 정국에 꽉 막혀 있습니다.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답답합니다. 이러한 때에 주님 주시는 평화가 더욱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우리 지난날 도와주신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전적으로 에벤에셀 하나님께 의탁합시다. 끝까지 에벤에셀의 주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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