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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가족(요19:25~30) 박승남 201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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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9:25~30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가족

 

 오늘 낮 최고 기온이 32도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우물가의 물 한 바가지가 그리워집니다. 옛날에는 버들잎 하나 띄워 준 물 한 바가지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물로 맺은 관계도 꽤 깊고 오랜 여운이 남습니다. 그러나 피를 나눈 사이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물보다는 역시 피가 진합니다. 이 자리에 서로 피를 나눈 분들 계시죠?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 말입니다. 피를 나눈 사이잖아요. 그래서 피 혈(血)자를 써서 혈연관계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는 장면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물보다 진한 피를 한 가득 쏟으십니다. “내가 목마르다.” 주님의 괴로운 음성이 들립니다. “내가 목마르다” 전쟁터에서 총상을 입은 병사는 ‘물, 물’하면서 죽어간다고 합니다. 피가 흐르고 몸속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 그렇게 타는 목마름 가운데 죽어갑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마지막 고통도 그래서 목마름이었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여러분 주님은 왜 피를 흘리셨을까요? 목이 타도록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 귀한 보혈을 흘리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피와 같이 붉은 우리 죄를 눈과 같이 말갛게 씻으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혹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하여, 보혈의 의미는 너무나 깊고 그 열매는 너무도 풍성합니다. 그래서 한 두 마디 말로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그 수많은 이유들 가운데 조금은 생소하지만 결코 빠질 수 없는 소중한 이유 하나는 오늘 본문은 소개합니다. 바로 한 가족을 탄생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물보다 진한 가족을 위에게 선물하기 위해,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아래서 지금 한 가족이 태어나고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 중에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사랑하시는 제자로 불린 사도요한입니다. 마리아와 요한 그렇게 두 사람이 나란히 주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을 주님이 번갈아 보십니다. 그리고 차례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여러분 예수님의 주례로 어머니 아니던 마리아가 어머니가 되고 아들이 아니던 요한이 아들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렇게 십자가 아래에서 한 가족이 탄생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육신의 어머니가 걱정되어 믿을 말한 제자에게 부탁하셨다고 말입니다. 당연히 그런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 누구보다 효성이 넘쳤으니까요~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도 육신의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가족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는 그보다 큽니다. 사사로운 육신의 정을 나누는 그 이상이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 교회란 무엇인가요? 십자가에서 태어난 가족, 피로 맺어진 가족, 우리 주님의 거룩한 보혈로 맺어진 가족 아닙니까? 교회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처음 생겼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묵상해 보면 십자가 아래에서 이미 교회는 시작되었습니다. 높이 달리신 주님이 당신의 보혈로 주례하시면서 어머니가 아니던 자를 어머니로 세우고 아들이 아니던 자를 아들로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십자가 보혈 아래서 가족이 아니던 두 사람이 한 가족으로 맺어졌습니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가족의 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더 귀한 가족을 우리에게 선물하고자 하셨습니다. 더 깊은 가족, 더 사랑하는 가족, 무엇보다 영원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정화수가 아니라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거룩한 피로 우리를 맺어주셨습니다. 마리아와 요한은 만대 교회의 대표자였습니다. 어머니가 아니던 사람이 어머니가 되고 아들이 아니던 사람이 아들이 되고 그렇게 교회가 되었습니다.

구원은 단지 죄 문제만은 아닙니다. 죄와 벌을 면제 받는 것이 우리의 구원의 전부가 아닙니다. 구원에는 뒤틀린 관계의 회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관계를 세워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과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인간은 피조물, 청지기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유혹을 받은 인간은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 자리를 탐냈습니다. 그 결과 관계가 엉클어져 그렇게 친밀하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관계에 금이 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버렸고 또한 여자는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엡2:13~14절을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로 하나님과 관계에서 자녀의 관계로 회복되고 사람 사이에 진정한 가족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 사이, 너와 나 시이에도 벽이 많습니다. 이기심의 벽, 교만의 벽, 거부감의 벽, 심지어 다른 고향의 벽, 이레 저래 많은 벽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보혈은 그 벽도 허무십니다. 그리고 가까워지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된 삶을 누리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여러분 2000년 전 마리아와 요한에게 말씀하셨듯이 주님이 오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젊은이들을 가리키면서 “노년, 장년들이여 보라. 그대의 아들과 딸들이라” 하십니다. 아멘입니까? 이번에는 주님께서 어른들을 가리키면서 청년들, 젊은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청년들, 젊은이들이여 보라, 너희의 아버지와 어머니시라” 더 나아가 말씀하실 것입니다. “보라 너희 자매들이다.” “보라 너희 남매들이다.” 딤전5:1~2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여러분 같은 여성들끼리는 어떤 분은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언니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같은 남성들끼리는 어떤 분은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형님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주 안에서 서로 간에 오빠가 되기도 하고 언니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 자리에~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또한 우리 셀 모임을 셀 가족 모임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피가 섞이지 않았다 해도 우리의 피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귀한 예수님의 피를 받아 이룬 가족입니다. 믿으십니까?

비록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어른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저분들이 바로 너희 아버지, 어머니이다.” “비록 너를 낳아준 부모는 아니지만 소중한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가족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어른들 입장에서는 요즘 젊은 것 하는 짓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네 아들이다”, “네 딸이다” 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십자가 아래에서 태어난 가족은 둘이 아니라 사실은 셋입니다. 마리아와 요한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마리아와 요한이 가족 되기 전에 먼저 가족이 된 짝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예수님, 예수님과 요한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마리아와 요한을 가족으로 맺어주신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주님이 연결자 되시어 마리아와 요한이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 안에서 그분의 피로 맺어진 한 가족, 교회입니다.

여러분 가족에는 어린이도 있고 젊은이도 있고 어른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에도 그렇습니다. 새신자도 있습니다. 아직 우리 교회에 대해서 또는 주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래서 돌보아야 합니다. 잘 적응하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태초부터 계신 이를 분명하게 잘 아는 성숙한 영적 아비도 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활동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19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10대, teenager의 마지막이요. 20대로 들어서는 길목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청년으로 접어든 것입니다. 사도요한이 기록한 요한일서 2:14절을 보면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고 말씀합니다.

청년은 패기의 단계입니다. 강하고 싸움을 잘합니다. 영적인 청년의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으로써 즉, 무기로써 사용할 줄 아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지적소에 적용하며 대응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악한 자와 흉악한 자의 공격에 맞서 승리하고 있는 자입니다.

골로새서 2:14절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악한 사단의 권세를 정복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처럼 청년의 신앙은 사단과 싸워 이기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사단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사단의 유혹과 시험 그리고 도전에 싸워 이기기 위해서 말씀의 검을 끊임없이 연단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칼을 가지고 엉뚱하게 같은 성도를 찌릅니다. 입술의 말이 비수가 되어 나의 영적인 자매, 남매, 보모의 자녀의 가슴에 상처를 남깁니다. 그래서 낙심케 하고 괴롭게 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가족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요즘 새벽에 묵상하는 창세기를 보면 여러 가족이 나옵니다. 부부인 아담과 하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가 나옵니다. 형제인 가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가 나옵니다. 부자 사이인 아브라함과 이삭, 이삭과 야곱과 에서가 나옵니다. 자매지간인 레아와 라헬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를 보면 아름다운 모습은 별로 없고 볼썽사나운 모습 투성입니다. 형이 동생을 죽입니다. 또한 동생이 형을 속입니다. 언니 동생이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주지는 못하고 도리어 시기 질투하고 경쟁합니다. 아내가 아들에게 아버지를 속이도록 합니다. 형이 동생을 죽이려고 합니다. 또는 노예로 팔아 버립니다.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어찌 이것이 가족이라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은 역사하시어 사람답게 만들어 가시어 화해하고 같은 마음이 되고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화면에 비춰지는
사진을 보십시오.


참 아름답고 행복한 가족사진입니다. 그런데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루 한 끼 가족이 밥상에서 만나자! 그렇다면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끼라도 밥상에서 만나자. 아니 일주일에 세 끼라도 밥상에서 만나자! 어떻게요? 여러분 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베풀어 주시는 밥상을 받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예배와 말씀 나눔에 참석하므로 자주 영적 식탁의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행복한 가족 공동체를 이룰 수 있고 또한 요한일서 2:14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말씀이 그 속에 거하기 때문에 흉악한 자를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가족은 어떤 이들일까요? 본문 27절을 보면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고 말합니다. 이처럼 그 때부터 요한은 마리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섬기고 돌보아 드렸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을 드리고 편히 쉴 수 있게 해 드리고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이렇게 받기만 했을까요? 아닙니다. 요한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섬기고 돕는 아름다운 가족, 따뜻하고 아름다운 대화가 있는 가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족이 가족 되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언어생활에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을 보면 말들의 입에 물리는 재갈,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배를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는 지극히 작은 키, 엄청나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 작은 불을 말하면서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로 혀는 우리 몸의 한 부분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고,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마지막에는 혀도 지옥 불에 타 버린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은 생명과 죽음을 부르는 위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여러분 말은 인간관계에서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관계를 이어 주고 발전시키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니 언어생활이 잘못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보십시오.

잠언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입을 조심하는 사람은 지혜가 있다.

11:13 험담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은 남의 비밀을 새게 하지만, 마음이 믿음직한 사람은 비밀을 지킨다.

21:23 입과 혀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역경 속에서도 자기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

15:1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지만,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

17:9 허물을 덮어 주면 사랑을 받고, 허물을 거듭 말하면 친구를 갈라놓는다.

10:32 의인의 입술은 남을 기쁘게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지만, 악인의 입은 거짓을 말할 뿐이다.

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고, 쑤시는 뼈를 낫게 하여 준다. 선한 말 중에 가장 선한 말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실로 우리의 심령을 즐겁게 하고 우리를 치료하고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엡4:29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

골4:6 여러분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잠25:11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이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마디의 좋은 칭찬으로 나는 두 달을 살 수 있다." 좋은 말이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며, 나쁜 말이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말을 해며 살아야 할 것입니까? 민 14: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귀에 들리도록 말한 그대로,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하겠다.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위해 보혈을 흘려주신 주님 앞에서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주님 베풀어주신 식탁의 교제를 함께 나누며 아름다운 언어생활을 함으로 좋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013년 6월 30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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