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라(신8:11~19) | 박승남 | 2013-08-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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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애굽을 기억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극심한 흉년 때문에 야곱 일가 70여 명은 애굽으로 내려갔고 국무총리였던 요셉 덕분에 비옥한 땅 고센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왕이 등장하고 그들은 졸지에 자유인의 신분을 잃고 노예로 전락합니다. 거대한 국가 창고를 짓는 공사에 투입되어 힘겨운 노역에 시달립니다. 그들은 자녀를 낳아 기르는 기본 권리마저 빼앗기고 희망 없이 살았습니다. 버림받은 고통의 자리요 아들을 낳아도 기를 수 없어 죽여야 하는 슬픔의 자리였습니다. 그런 비극과 절망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그 아픔과 고통의 기억을 떨쳐 내버릴 만도 한데 하나님은 다시 그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너희의 삶을 기억하라.” 이것은 괴롭혔던 애굽 나라와 원수로 살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너희가 어떠한 처지에 있었는가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애굽이 있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정복이라는 야망을 가지고 칼을 갈고 있었을 때 우리의 조상들은 당쟁을 일삼았고, 우상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무력으로 국권과 강토를 빼앗고 우리의 고유문화를 짓밟으면서 민족의 혼 자체를 말살하려고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조선의 젊은이들은 그들이 일으킨 전쟁의 총알받이와 위안부로 끌려가 동남아와 중국에서 죽어 갔습니다. 교회에 가해진 압박은 더했습니다. 종탑의 종들을 철거해 가고, 율법서와 요한계시록은 삭제를 당했고, 나중에는 구약은 부교재 정도로 사용하게 했고, 사복음서만 읽게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예배 전에 일본 국기에 배례를 하게 했고, 1943년 9월부터는 주일 밤 집회와 수요 기도회를 모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신사 참배를 강요했고, 민족과 교회 지도자들을 모조리 잡아 가두고 45년 8월 18일에는 그들을 모두 학살할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습니다. 말과 성씨와 자유와 젊은이들과 민족의 혼을 빼앗겨 버렸던 어두웠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1945년 2월 16일 시인 윤동주는 후쿠오카 감옥에서 27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일본 경찰은 뇌일혈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지만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젊은 문학도 윤동주는 생체 실험 대상이 되어 의문의 주사를 맞고 죽음을 맞았던 것입니다. 민족의 격동의 시간, 이 청년 시인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식민지로 있던 당시 국가적 상황에서 이런 죽음은 부지기수였고 한 젊은이의 의문의 죽음을 기억하기에는 살기가 너무 힘들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48년, 해방된 지 3년 후에 그의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판되면서 사람들은 그의 아름다운 시심과 민족을 가슴에 안고 몸부림쳤던 그의 고뇌와 몸을 던진 조국 사랑을 기억하기 시작했고, 가장 사랑받는 민족 시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민족의 캄캄한 밤에 조국을 가슴에 품고 몸부림쳤던 그의 고민은 주보에 실린 시, “십자가”에 잘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시인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에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나라 잃은 정신적 고뇌를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교회당 꼭대기 첨탑에 걸린 십자가와 거기에 걸린 햇빛은 순결과 광명의 상징이자 조국 광복을 상징합니다. 당시 조국의 현실은 암담했고 아무런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절망적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존립을 위해 친일 행각을 일삼을 수밖에 없었던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젊은 시인은 무력감과 자책감에 사로잡혀 서성이는 것밖에 할 것이 없었지만 그의 조국 사랑은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국 광복을 위해서 내놓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표출됩니다. 그러나 그 희망의 첨탑은 오르지 못할 만큼 높고, 희망의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지만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서 그의 조국 사랑은 자기희생의 의지로 가득합니다. 이것을 “괴로웠던 사나이”라는 시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조국 광복을 위해서 그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지는 “모가지를 드리우는” 비폭력 저항이었습니다. ‘파락호’(破落戶)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이는 지난날 ‘행세하는 집의 자손으로서 허랑방탕해 집안 살림을 몽땅 털어먹은 난봉꾼’을 이르는 말입니다. 근대 한국의 3대 파락호 중의 한 사람으로 학봉 김성일의 종손인 김용환이 있습니다. 학봉은 퇴계 이황의 수제자로 임진왜란 때 경남 지역에서 크게 공을 세운 인물이지요. 그의 13대손인 김용환(1887~1946)은 대대로 내려오던 전답 18만 평, 현재 시가로 약 200억 원을 모두 거덜 냈다고 합니다. 그는 아주 노름을 즐겼는데, 안동 일대의 노름판에는 그가 꼭 끼어 있었다고 하고 종손의 노름행각으로 종갓집도 남의 손에 넘어가고 수백 년 동안 종가의 재산으로 내려오던 전답도 다 팔아먹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김용환의 외동딸이 신행 때 농을 사 오라고 시댁에서 받은 돈이 있었는데 이 돈마저 훔쳐 가서 노름으로 탕진했기 때문에 결국 딸은 빈손으로 시댁에 갈 수 없어서 친정 큰어머니가 쓰던 헌 농을 가지고 가면서 눈물 바람을 했답니다. 이럴 정도이니 얼마나 욕을 먹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파락호가 만주에 독립 자금을 댄 독립투사였음이 사후에 밝혀졌습니다.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철저하게 노름꾼으로 위장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간 탕진했다고 믿었던 돈은 모두 만주 독립군에게 군자금으로 보냈음이 알려졌으며 파락호 행세는 왜경의 눈을 피하기 위한 철저한 위장술이었습니다. 거금을 아낌없이 희사한 것도 경탄할 일이지만 주색잡기, 노름꾼 등 불명예스런 비난 속에서도 식구들에게조차 절대 함구한 의지력 또한 놀라울 따름입니다. 광복 후에 죽음을 앞둔 그에게 오랜 친구가 “이제 광복이 되었으니 자네가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 한 사실을 밝히면 어떤가?”라고 했더니 “선비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1946년 눈을 감았다고 하니 위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김용환의 무남독녀 외동딸인 김후웅 여사는 1995년 아버지 생전의 공로로 건국훈장을 추서 받게 되자 아버지에 대한 그간의 한 많은 소회(所懷)를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라는 제목의 서간문으로 남긴 바 있습니다. “…그럭저럭 나이 차서 십육 세에 시집가니 청송 마평 서씨 문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 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농 사 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다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 날 늦추다가 큰어매 쓰던 헌 농 신행 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 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 붙어 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꼬.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 값 그것마저 다 바쳤구나….” 아,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귀한 피를 흘린 젊은이들이여, 위대한 파락호여! 위대한 독립투사여! 그렇게 하여 주어진 조국입니다. 그렇게 주어진 해방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은혜와 복을 어떻게 간직할 것입니까? 하늘의 은혜가 있어 조국 광복의 햇살이 비추어 왔고, 저항하는 몸짓으로 그렇게 찾으려고 했던 나라의 주권을 회복한 지 올해로 68주년이 됩니다. 해방 후에도 전쟁의 소용돌이도 있었고,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이 있었지만 하늘의 은총이 있어 우리는 이만큼 누리면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켜 내려고 했던 조국을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요? 임종이 다가오고 있던 때에 모세는 애굽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신 32:7)고 권고합니다. 왜 그것이 중요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잊어버렸을 때에 감사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감격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힘든 광야 사막 길을 걸어갈 때 애굽을 기억하기만 하면 새 힘이 났습니다. 가나안의 풍요 속에 살아갈 때 애굽의 종살이 하던 때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도 영적 애굽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하던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벧전 2:10).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요, 사망의 덫에 걸려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진노의 자식들이요, 멸망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 서 있었던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도무지 받을 수 없는 그런 자리에서 떨고 서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한없는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용납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참으로 지옥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주신 천국을 감사할 수 있고, 감격하며 그곳에 이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합니까? 본문은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된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고, 그분의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느 누구도 바로의 압제에서 풀려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전권을 가지고 바로에게 나아가지만 권력자는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너희가 대단한 존재들이어서, 숫자가 많아서 택한 것이 아니라 무궁한 사랑으로 너희들을 택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광야의 길을 갈 때 너희들을 돌보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하늘 문을 여셔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 주시던 그 하나님을 기억하라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날까지도 유월절, 즉 해방절을 지키면서 4,000여 년 전에 그들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었을 때 그들은 건강했습니다. 그들은 싱싱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은 유대인들의 우상 숭배 질병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로 귀환 후에 또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나자 그들은 다시 무너집니다. 무엇 때문에 애굽을 허락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의 해방 사건을 가장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을 향해 “내 백성”(출 3:10)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6:7).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요,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해방하셨다고 말씀합니다(8:27).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잊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설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느 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이때”에 대해 깊이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너희가 풍요롭게 될 때, 모든 일이 잘되어 갈 때, 아름다운 땅에서 살게 될 때에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 문제가 있을 때, 고통과 아픔이 있을 때는 하나님을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 될 때, 근심 걱정이 없을 때 흔히 이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하나님을 잘 믿을 것 같고, 충성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만 넘기고 나면 잘 할 것이라고 다짐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헛셀 포드 목사님의 책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청년이 그 목사님을 찾아와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새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이 잘되게 기도해 주십시오. 그 사업이 잘되게 해 주시면 하나님께 십일조도 드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하겠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했고 그 응답 때문인지 그 청년의 사업도 놀라울 만큼 번창했습니다. 사업이 계속 커지자 청년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약속했던 것을 까마득하게 잊었습니다. 예배 출석도 등한히 했고, 잘하던 헌금 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회사로 심방을 갔습니다. “요즘에 왜 예배도 안 나오고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십니까? 사업 시작할 때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잊었습니까?” “목사님 사업이 여간 바빠야지요. 또 돈의 액수가 커지니까 회사 경영상 수입의 십분의 일을 떼어 내기가 힘이 들어서입니다. 여러 군데 사업장을 벌이다 보니까 교회에 가고 싶어도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그 청년 실업가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형제의 수입이 너무 많아서 십일조를 드리기가 어렵답니다. 수입의 규모를 옛날과 같이 훨씬 줄여 주시옵소서. 또한 교회에 출석하고 싶어도 사업이 너무 잘되어 바빠서 예배에 못 나온답니다. 사업장도 작게 줄여 주시고, 사업도 잘 안 되게 하셔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게 하시고 예배 출석도 잘 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그 기도를 받고 청년 사업가는 회개하고 믿음 생활을 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가난할 때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어려울 때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고, 모든 일이 잘되어 가고, 풍요로워질 때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걸어가는 이스라엘을 걱정하신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을 걱정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해질 때 교만해져서 그것들을 잊지 않도록 권고합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12~13절)에 삼가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풍족해지면, 걱정이 없으면 영적 생활을 등한히 하게 되고,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아셨기에 바로 그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시대가 그러한 시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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